레슬리 링카 글래터, 클라크 존슨 감독. HBO. 러브 & 데스
캔디(엘리자베스 올슨)는 살인을 한다. 그전에 외도를 했다. 외도를 하기 전 캔디는 평범해 보이는 주부였다. 그 시절 미국 어느 동네의 평범한 주부, 많이 가난하지도 그렇다고 넘치게 부유하지도 않은 가정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는 성인 여성, 대다수가 이렇게 보여서 평범이란 딱지를 붙였지만 다른 관점으로는 결박이자 구속이었고 억압이자 강요였다. 외도는 목적이 아니었다. 이웃집 남편을 덮치고 싶어서 안달 난 상태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캔디는 한없이 밝고 상냥하고 다정하고 적극적이며 따스해 보이는 사람으로서 동네 커뮤니티의 중심이었지만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였을 뿐, 한구석에는 구체적으로 말하기 힘든 어둠과 음울이 있었다. 캔디는 내면과의 대화를 멈추고 탈출구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여러 개의 문 중 하나가 같은 교회 다니는 이웃집 남편 알란(제시 플레먼스)이었다. 알란에게 외도를 제안하고 오랜 협의 기간을 걸친 후 외도를 시작하기로 한다. 마치 신규 프로젝트를 구상 중인 회사가 협력사를 선택하는 과정과 많이 비슷했다. 동네에서 좀 떨어진 모텔에서 정기적으로 만나기로 한다. 대화하고 음식을 먹고 몸을 섞고 헤어진다. 이 과정을 반복한다. 교회에서 마주치면 인사하고 근황을 나누고 서로의 아이들을 봐주기도 한다. 아주 친한 이웃이었고 아주 친한 외도 상대였다. 그러다 흔들리는 감정을 걷잡을 수 없고 알란에게 둘째 아이가 생기고 부부 관계의 회복을 도모하면서 외도를 그만두기로 한다. 그렇게 외도는 멈춘다. 남은 감정이 있었지만 당사자들은 넘었다가 돌아온 선을 다시 넘지 않기로 한다. 넘지 않는다. 적어도 둘은 그랬다고 믿었다. 알란의 아내, 베티가 둘의 묘한 기류를 눈치챈다. 단도직입적으로 캔디에게 묻고 캔디는 인정한다. 베티(릴리 레이브)는 알란의 부재를 늘 두려워했었다. 며칠 출장조차 견디기 힘들어했고 그래서 둘째 셋째 아이에 대한 집착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외도라니. 그것도 의심이 아닌 진짜였다니. 베티는 도끼를 가져오고 캔디를 향해 휘두른다. 그리고 첫 문장으로 돌아온다. 캔디는 살인을 한다.
베티는 40군데를 난자당한 시체로 발견된다. 작은 동네는 난리가 나고 뉴스 보도가 멈추지 않고 캔디는 원하지 않던 방식으로 유명해진다. 재판이 시작되고 캔디와 변호인은 준비한다. 캔디는 수감되지 않는다.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재판을 준비한다. 캔디의 남편(패트릭 퓨깃)은 미안해한다. 그는 평소 아내를 향한 자신의 무심함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캔디의 외도의 배경을 납득한다. 그리고 무죄를 판결 받기 위해 같이 노력한다. 캔디의 변호사는 캔디의 정확한 정신상태의 파악을 위해 전문가에게 보내고 전문가는 최면을 통해 캔디의 억눌린 버튼을 발견한다. 엄마. 캔디의 엄마는 어린 딸의 행동과 정신을 억압할 때마다 신호를 보냈고 그 신호는 캔디의 인생과 태도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베티의 도끼날을 피하던 중 캔디는 그 신호음을 다시 들었고 그 순간 캔디는 폭발했다. 억눌린 캔디의 또 다른 자아가 과거의 엄마를 향해 복수하는 악몽이었다면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억눌린 캔디의 또 다른 자아가 깨어나 소리의 출처를 향해 셀 수 없이 도끼를 휘둘렀고 베티는 난자당한 후 사망했다. 세상은 불륜녀가 상대남자의 아내를 처참하게 죽인 도끼살인극으로 떠들었지만 캔디는 태연히 일상을 보내고 차분히 재판을 준비하고 증명하고 무죄를 선고받고 가족과 함께 동네를 떠난다. 이웃집 남편과 외도를 통해서도 오랜 억압으로부터 일탈할 수 없었던 캔디는 이웃집 아내를 살해하고 나서야 물리적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엄마의 환영은 완전히 사라졌을까. 좋은 딸로 남을 수 없어서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을까. 캔디는 피에 굶주린 싸이코가 아니었다. 피해자였다가 가해자가 되었고 여성 범죄자에게 더더욱 보수적인 그 시절 법정에서 무죄를 판결받은 사람이었다. 물론 판결이 행위를 모든 면에서 정당화시켜 줄 순 없다. 사회적 공감대 안에서 납득할만한 여지가 있다 정도일 것이다.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캔디는 결과적으로 감옥이나 사형대에 가지 않았다. 덧붙여 캔디와 외도를 저지르고 아내가 살해당한 알란은 이후 다른 여성을 만났다고 한다. 지금도 여기에도 얼마나 많은 캔디가 성인 여성이 되어 일탈을 갈망하며 살고 있을까. HBO 러브 & 데스는 실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