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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Jul 30. 2024

괴물, 난 왜 태어났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괴물

어차피 잊혀질 거니까 적당히 해도 돼


실제로 어땠는지는 아무런 상관없어


애들 앞에서 말 걸지 마


당신은 적에게 공격당했을 때

온몸의 힘을 다 빼고 포기합니다


난 왜 태어났어?



인간의 부조리는 열거하면 끝이 없다. 특히 아이들에 대한 태도를 들여다보면 더욱 그렇다. 인류의 개체수가 현격하게 줄어야 할 이유를 바로 납득하게 된다. 인간은 해롭다. 특히 자기 자신에게서 파생된 생명체에겐 더욱 그렇다. 한계가 있는 인간은 전혀 그렇지 않은 아이와 같이 살면서도 자신의 한계를 모조리 아이에게 뒤집어 씌우기 바쁘다. 쉽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당면했을 수많은 비극과 불행을 자신에게 가장 가깝고 가장 연약한 대상인 아이에 대한 폭력과 가학을 통해 해소하려 발악한다. 아이의 몸은 그렇게 온통 멍투성이가 되고 학교생활 또한 보호자와 비슷한 또래집단에 의해 산산조각 난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에게 아이다움, 학생다움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 또한 가혹할 정도다. 하지만 현실의 아이는 그런 보호자에게서 물리적으로 떨어질 수 없다. 법이라는 시스템이 겨우 작동해 강제로 분리시키지 않는 이상, 아이는 빈집에서 시체로 발견되어도 모를 정도로 아무도 문을 두드리지 않는 집에서 아무도 열지 않는 방 안에서 아무도 막지 않는 폭력을 당하고 당하고 또 당하게 될 뿐이다. 요리(히이라기 히나타)의 삶이 그랬다. 요리에게 태어나기 전 한 번이라도 이런 삶이라도 태어나겠냐고 물어봤다면 절대 대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혼에 실패한 남성이 떠난 아내에 대한 분풀이의 대상을 아이로 했을 때부터 요리는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날마다 죽어야 했다. "온몸에 힘을 빼고 포기"해야 했다. 같은 반 무기노(쿠로카와 소야)는 유일한 빛이었다. 그조차도 다가오기 머뭇거리며 가해자인척 해야 했지만 요리에게 무기노는 계속 맞고 지내도 며칠은 더 견딜 수 있는 이유가 되어 주었다. 무기노에게 불륜을 저지르다 사망한 아버지가 있어서였을까. 무기노의 엄마(안도 사쿠라)는 노력했지만 무기노는 평생 아빠의 선택과 결말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저런 인간에게 태어난 자신이 어쩌면 실수였는지 아니면 자신의 끝도 저렇게 추악하게 맺어질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알 수 없이 매일 처참하고 공허했다. 비슷한 사람들은 왜 서로를 알아볼까. 같은 반 요리는 무기노에게 빠르게 눈에 띄었다. 그가 괴롭힘 당하는 걸 대다수 아이들이 구경만 하고 있었다. 무기노도 그중 하나였다. 암묵적 침묵으로 동조하는 자. 하지만 요리는 다른 차원에서 자신과 분리된 한 몸처럼 느껴졌다. 존자 자체가 위로였다. 끔찍한 불행이라는 교집합으로 둘은 같이 놀고 어울리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태풍이 산을 무너뜨리고 세상을 멸망시켜도 둘은 아무렇지 않았다. 불행하지 않았다면 그때도 서로에게 이렇게 손을 내밀었을까. 마주 보며 웃었을까. 세상 끝을 모르는 듯 마구 달렸을까. 세상에 내던지기만 한채 책임지지도 돌봐주지도 않고 죽거나 때리기만 하는 "돼지의 뇌"보다도 못한 인간들 사이에서 둘은 연약하고 순수한 괴물일 수밖에 없었다. 가해자들이 끝까지 자신들을 인간으로 불리기 원한다면 요리와 무기노는 둘만의 괴물이 되어 도망치고 싶었다. 분리만이 살길이었다. 다시 겹친다면 고통과 슬픔이 다시 재생될 뿐이었다. 인간은 1인분의 고통을 감당하지 못해 허우적거렸고 모자란 자들이 연합해 거짓말을 총동원해 머리를 숙이고 있었으며 비극을 은폐하고 진실을 알려하지 않았다. 가벼운 소문과 외마디 농담이 섞여 집단과 개인의 생존을 뒤흔드는 거대한 여론이 되고 있었다. 희생자가 속출했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런 개 같은 지옥에서 견디는 어른들이 어떻게 아이들을 책임질 수 있을까. 아무도 지킬 수 없었다. 아무도 아이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른들의 아귀다툼은 아이들에게 어떤 이로움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무기노와 요리는 오랫동안 학습되었기에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 그냥 괴물이 되자. 아무도 없는 우리만의 숲에서 영원히 뛰노는 괴물로 살아가자. 돌아가지 말자. 인간을 믿지 말자. 우리 인간이 되지 말자. 이렇게 잊혀지자. 영원히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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