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가여운 것들
아버지는 틀을 깨는 사고방식의 소유자였지
벨라는 실험체야
태아의 뇌를 꺼내
여인의 몸에 넣어 살린 다음
관찰하는 거지
내 아버지가 뜨겁게 달군 다리미로
내 생식기를 지진 것도
과학 연구를 우선시했기 때문이지
당신을 파멸시킬 겁니다
결혼 안 하면 날 죽이겠다고요?
그들 말고 그녀들 얘기는 왜 없을까요?
요즘 계속 책을 읽네요
예전의 귀여운 말투도 점점 사라지고 있고요
다른 남자랑 딱 한 번
잤다는 이유로 그때의 마음이
다 사라진 거예요?
우리는 칭찬과 초콜릿으로 굴러가는 기계일 뿐이죠
엄밀히 말해 네가 네 아기란다
또 네가 네 엄마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해
거짓말과 구속은 영원히 잊지 않겠어요
얼마 전 죽은 딸의 얼굴을 다친 엄마의 얼굴에 붙이는 이야기(이충걸 소설 너의 얼굴)를 읽은 적 있다. 읽을 때도 충격이었지만 덮고서도 잔상이 오래 남았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가여운 것들도 비슷하거나 조금 다르거나 많이 다르다. 거의 죽은 엄마의 머리에 살아있는 태아의 뇌를 넣는다. 천재 외과의사 갓윈 백스터(윌리엄 데포)의 작품이었고 벨라(엠마 스톤)라고 부른다. 벨라는 갓윈을 하느님이라고 부른다. 둘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 외형을 이루지만 정서적으로 아빠와 딸처럼 지낸다. 아버지에게 어릴 적부터 내내 생체실험을 당한 갓윈은 냉혹한 과학자의 태도를 고수하려 하지만 그는 벨라에게 인간적인 감정을 지닌다. 괴물을 만들고 인간처럼 대한다. 외부 노출은 절대 불가라는 원칙이었지만 아기 수준에서 점점 언어 및 사고 능력이 발달하는 벨라에게 바깥세상은 언젠간 반드시 마주해야 할 꿈이었다. 갓윈은 제자 의사 맥스 매캔들스(라미 유세프)의 감정을 이용해 서둘러 둘을 결혼시키려 하지만 변태 변호사 덩컨 웨더번(마크 러팔로)에게 감정과 판단력을 빼앗긴 벨라는 급작스럽게 여행을 떠난다. 덩컨은 벨라를 여행 내내 성적으로 착취한다. 이성보다 감각과 본능이 먼저 발달한 벨라는 덩컨의 성적 노예가 된다. 하지만 벨라의 사고 능력과 지성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었다. 책은 물론 주변 지성인들과의 교류를 차단하려는 덩컨을 무시하고 벨라는 두려움 모르는 지성인으로 내면적인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벨라에게 점점 덩컨은 미개하고 치졸하며 질투에 사로잡힌 무지한 짐승에 불과했다. 덩컨의 재산을 모두 남에게 준 벨라는 파리에서 홀로서기를 시도한다. 경제력과 자립이 필요했던 벨라가 파리에서 머물 곳은 여성이 남성에게 섹스를 파는 유흥업소였다. 벨라는 윤리와 도덕과 계급과 시선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그곳에서 벨라는 다양한 짐승들을 겪으며 영혼의 공허함에 도달한다. 자신을 거지로 만든 벨라에게 더럽다고 욕하는 덩컨은 벨라에 대한 집착과 소유 욕구를 주체하지 못한다. 하지만 벨라에게 덩컨은 더 이상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그저 가여운 것이었다.
위독하다는 갓윈의 소식에 벨라는 돌아온다. 벨라는 떠날 때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고장 난 로보트에서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 지성인으로 부품과 외형을 갈고닦은 것처럼 보였다. 벨라는 오랜 시간 헌신적인 연모를 거두지 않은 맥스에게 청혼한다. 그리고 결혼식날 자신을 (당연히) 아내로 착각한 생물학적 아버지이자, 생물학적 엄마의 남편에게 간다. 몸은 엄마 뇌는 딸인 여성이 남편이자 아빠인 성인 남성 오브리(크리스토퍼 애벗)와 마주 앉아 식사를 한다. 그 자리에서 벨라는 엄마가 죽기 전 경험한 모멸과 치욕, 차별과 폭력을 모조리 경험한다.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복수가 빠질 수 없었다. 벨라는 자신의 기원을 복기한다. 오브리에게 염소의 뇌를 심는다. 엄마와 자신의 살인범이나 마찬가지였던 오브리는 이제 평화로운 풀밭에서 네발로 걷는다. 벨라는 책을 읽는다. 의사를 꿈꾼다. 벨라는 앞으로 더 많은 남성들을 수술할 것이다. 여성을 가엾게 만든 남성들의 목을 따서 돼지와 닭의 몸통에 붙여줄 것이다. 그들이 뒤뚱거리는 정원에서 벨라는 책을 읽을 것이다. 우아하고 느긋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