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욱 감독. 리볼버
여긴 눈물이 없다. 다들 한없이 가볍다. 아파트, 마약, 감옥, 리볼버 중에 아파트가 가장 중요하다. 아파트의 현재 시세와 못 받은 돈이 가장 중요하다. 주변 사연이 있는데 말 그대로 주변이다. 사랑, 미래, 배신, 면회, 표정, 까인 고백, 멋진 언니, 빚, 정신 나간 전남편 새끼, 어둠의 권력, 그의 오른팔, 실종, 일처리, 파괴된 의리, 협박, 엄마와 아들, 금쪽이, 이스턴 프라미스 등등이 있는데 하수영(전도연)에겐 다들 하찮고 귀찮고 번거로운 것들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카운슬러에 진실엔 온도가 없다는 대사가 나온다. 그 대사를 읊조린 인물은 군중 즐비한 도심 한가운데에서 한 남성의 목이 천천히 잘릴 때까지 자동으로 조이는 줄을 걸어주기도 했다. 오승욱 감독이 만든 하수영도 비슷하다. 하수영에겐 온도가 없다. 처절한 복수심에 불타오르지 않는다. 집요함만 남았다. 끝까지 떼인 돈을 받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출소 후 주변인들을 탐문한다. 복잡해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일상이 복잡해진 건 하수영의 돈에 관계된 주변인들 뿐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사시미를 비롯한 온갖 장비를 풀창작하고 존윅의 현상금 사냥꾼들처럼 화려하게 열심히 덤비는 것도 아니다. 죄다 양아치다. 서글플 정도로 하수영 주변엔 이런 인물들 밖에 없다. 그나마 이정재 아니 임석영이 조금 더 사람 같긴 했는데 하수영이 감옥에 누워서 죽은 시간 세는 사이 영문도 모르고 죽었다. 그렇게 하수영에겐 돌아갈 곳이 완전히 없어졌다. 임석영은 하수영의 과거 미래 꿈 희망 용서 복수 등이 총합된 중심이자 목적지이자 전부였다. 임석영은 유언 없이 죽었고 하수영은 돈이라도 챙겨야 했다. 하수영은 천지가 진동할 듯 절규하며 양아치들을 도륙하지 않았다. 하수영은 반복해서 요청했고 이 요청의 정당과 상식을 강조했다. 양야치들 사이에서 하수영은 당당했다. 허세 없이 일을 마무리 짓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정윤선(임지연)이 언니 언니 부르며 귀신처럼 따라다니긴 하는데 어차피 믿지도 않았고 믿을 이유도 없고 같은 여성이라고 연대할 명분도 딱히 없었다. 어차피 남의 인생 파탄 내려고 작정한 개미지옥의 버러지들. 하수영은 원래 신혼집 예정이었던 아파트와 약속한 돈 입금을 확인받고 등을 돌린다. 피도 눈물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