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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Sep 19. 2024

셰프는 어떻게 악마가 되는가. 더 베어

크리스토퍼 스토러 각본&연출. 더 베어 시즌1-3

우리의 모든 시간과 돈, 일이 여기에 빨려 들어가

우리가 되찾는 건 혼돈과 분노뿐이지


1초가 아깝다!


뭐 좀 물어봐도 돼요?

닥치라고 해도 돼요


누가 실수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죠

무조건 힘을 합쳐야 해요


정말 잘하고 싶어서 긴장이 좀 돼요


레지던트 생활은 얼마나 끔찍해?

넌 아마 상상도 못 하겠지

진짜 끔찍하고 힘들다고 말이야

근무도 100시간 일하고 두 시간 쉬고

그 일을 좋아하니까 하는 거겠지

그렇게 끔찍하고 힘들어도 말이야

식당도 100시간 일하고 두 시간 쉬지 않나?


위층에서 아빠 총 좀 가져올래?

난 내 머리에 총알 박을 테니

너희끼리 식사 준비나 해

내가 죽어도 다들 모를 테니까!


계산서를 주지 말고 감동을 줘야 합니다


얼룩 남은 접시 때문에 남은 접시들을 바꿨죠

45초가 날아갔고요 47초요

그런 시간을 낭비시켰으면 누가 됐든 책임져요

식당 전체를 위태롭게 했으니까요




압박에 익숙해지면 압박의 일부가 된다. 압박을 받는 자에서 압박을 주는 자가 된다. 여전히 스스로를 압박에 짓눌린 자로만 인식하겠지만 주변의 반응은 조금 다르다. 식구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괴성과 고성을 지르는 엄마, 하루종일 정성껏 요리한 음식이 놓인 식탁을 파괴하고 내던지는 엄마, 차를 몰고 집안으로 밀고 들어와서 부엌을 박살 내는 엄마, 비아냥과 멸시, 시비와 시비를 주고받다가 욕설과 주먹을 나누는 친척들, 피는 물보다 진해서 얼마나 불편한가. 카르멘(제레미 앨런 화이트)은 도망갈 곳이 없었다. 관심과 재능은 요리였고 이 또한 날벼락처럼 생성된 것이 아닌 부모에게서 온전히 흘러온 것이었다. 아버지가 차려서 망한 식당을 형 마이클이 이어받아 다시 망하고 있었다. 카르멘은 부유하고 다정한 친척의 도움으로 개미지옥 시카고를 빠져나와 뉴욕에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셰프로 성장한다. 요리에 집중할 때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자기 자신까지도. 그 과정 또한 새로운 악귀가 들러붙었다. 작은 목소리로 읊조리고 있었다. 넌 최악이고 니가 만든 음식은 최악이라고. 쉴 새 없이 들으며 최고의 메뉴를 만들어야 했다. 형(존 번탈)의 죽음은 브레이크였다. 카르멘에게 마이클은 삶에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원점이었다. 어느 날 원점이 사라졌고 카르멘은 붕괴되었다. 아무리 빠르고 강력하게 달려 나간다 해도 방향을 잃어서 어떤 존재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 며칠 몇 주 고민한다고 온전해지는 게 아니었다. 카르멘은 형이 없는 형의 식당으로 돌아온다. 이미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의 셰프로 알려진 카르멘이었다. 그의 결정은 스스로를 제외한 모두에게 생경했다. 하지만 카르멘은 이런 결정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압박에서 새로운 압박으로 도망쳤고 새로운 압박을 경험하고 새로운 압박의 수준을 높이다가 다시 과거의 압박으로 돌아왔고 잠시 잊었던 압박에 얽매인다. 먼 과거와 과거의 압박이 새로운 압박이 되어 카르멘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카르멘은 이 과정이 즐거웠을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서 오히려 더 압박의 압박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을까. 불면, 알콜 중독, 신경 쇠약과 더불어 카르멘의 모든 일상은 불판 위의 지글거리는 버터처럼 휘발되고 있었다. 스테이크의 겉면처럼 타들어가고 있었다. 목이 잘린 생닭처럼 벗겨지고 묶여 있었다. 손질된 야채처럼 하염없이 잘리고 있었다. 바닥에 쏟아진 대용량 소스통처럼 질척거리고 있었다. 냉동실 손잡이처럼 부서져 있었다. 오래된 프라이팬 바닥처럼 오염되어 있었다. 쓰레기통 속에 내던져진 플레이트처럼 부패되어 있었다. 카르멘은 아직 세상을 다 모르는 멍한 소년의 표정을 짓고 있을 때가 많았고 말 그대로 길 잃은 아이와 다를 게 없었다. 알콜 중독 치유를 위한 상담 모임을 전전하고 과거의 오만가지 덫에 제압당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매번 한계는 독버섯처럼 돌출했다. 자기감정에 휩싸여 쉴 새 없이 악을 지르고 공격적인 언행을 멈추지 않으며 이런 인간인데도 감싸 안으려는 가장 가까운 주변인들을 야멸차게 찢어버렸다. 스스로의 존재감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하는 인간은 타인의 존재감 역시 제대로 인지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했다. 행복을 못 견뎌했고 불안 초조 긴장 속에서 겨우 찰나의 아늑함을 느낄 수 있었다. 카르멘에게 가장 안정된 상황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1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주방, 그 안에서 카르멘은 완벽해야 하는 세계의 지휘자이자 책임자였고 이런 망상 속에서 스스로와 구성원들을 학대했다. 잠시 일반인 모드로 정신이 돌아올 때면 한없이 너그럽고 따스했지만 잠깐이었다. 다시 주문과 조리와 서빙이 시작되면 고대하던 지옥이 도래했다. 사람과 재료가 다 같이 불타오르는 세계 속에서 카르멘은 가학과 자학을 즐기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카르멘은 그 세계의 불안정한 질서를 흠모하고 탐닉하며 만끽하고 있었다. 균형 잡힌 커뮤니케이션과 타자지향적인 감정과 태도가 오가는 사랑 같은 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애초 없었다. 카르멘은 셰프라는 나쁜 피를 타고 태어나 독재자가 되어 주방을 전두지휘하고 혼자 있는 시간 고뇌하고 고통스러워하며 한시라도 빨리 지옥문이 다시 열리길 고대하며 시계만 바라봤다. 미친 엄마(제이미 리 커티스), 죽은 형, 상처 깊은 누나(애비 앨리엇), 건달 같은 사촌(에번 모스배크랙), 갑자기 빠져든 여자친구(몰리 고든)까지 어느 하나 카르멘과 같을 수 없었다. 카르멘에겐 원본이 없었고 불안 불확실 그 자체였다. 더 베어는 상처받은 셰프의 거친 성장기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영원히 행복해질 수 없는 한 인간과 주변인들에 대한 차갑고 서글픈 보고서이기도 하다. 최고의 레스토랑들이 줄줄이 폐업하고 있는 시카고에서 카르멘의 입체적 성공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모두가 결과를 알면서도 계속되는 고문 장면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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