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카 이사오 감독.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인간의 포클레인이 지붕을 뚫고 덮칠 때 너구리들이 느낀 감정은 공포였다. 신도시 개발은 인간 입장에선 문명의 진화였다. 오래된 것들을 부수고 새것을 쌓고 깔아 더 나아 보이게 만드는 착시와 혜택이 있었다. 사람 몰리는 곳에 아파트와 술집을 새로 지으려면 나무를 뽑고 산을 깎아야 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인간은 너구리에게 위협적인 존재까지는 아니었다. 조금 불편해도 인정하며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신도시 개발과 함께 사정이 달라졌다. 자본과 이권이 달린 문제에서 자연은 장애물이었다. 너구리로 대표되는 동물들의 안위는 상관없었다. 너구리들은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이들에겐 역사와 전통, 규율과 문화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난 처음부터 이들이 너구리로 보이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던 인간, 애초 그곳에 서식하던 인간을 비유한 존재로 여겨졌다. 개발은 파괴였다. 콘크리트가 토착민들의 숨통에 부어지고 있었다.
너구리들은 단합해야 했다. 인간을 모두 죽여야 한다! 구호는 거칠었지만 일리가 있었다. 죽이지 않으면 멈출 수 없었고 멈추지 못하면 너구리들이 모두 죽어야 했다. 변신술로 안간힘을 써보지만 한계가 자명했다. 그때 여우가 속삭인다. 우리처럼 인간으로 모습을 바꿔 술집에 취직하라고. 전체관람가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신도시 개발을 소재로 캐릭터들이 신도시 유흥산업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생존을 먼저 위협받은 여우들은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적응하고 있었다. 너구리 무리의 원로들은 머릴 모은다. 거대한 쇼를 해서 관심을 모으기로 한다. 민심을 해치는 흉흉한 신도시 개발을 중단하라고 여론 몰이를 하기로 한다. 너구리들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변신술을 총동원해서 밤하늘과 거리를 수놓는다. 장난과 겁박, 감동과 공포를 동시에 전시한다. 두려움에 휩싸인 평범한 사람들이 귀신에게 원한을 샀다며 건설사에 항의한다면 공사를 중단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신도시 개발의 책임자인 건설사 대표가 성명을 발표한다. 이건 다 우리가 계획한 거라고. 놀라게 해서 죄송하다고. 너구리들은 건설사의 위기관리 전략에 아연실색한다.
미래는 없었다. 희망 없는 곳에서 노인과 아이들은 저 멀리 사라진다. 너구리들은 이합집산을 반복한다. 그리고 개발은 멈추지 않는다. 너구리의 관점에서 인간은 침입자였지만 신도시 인간의 관점에서 너구리는 흉물이었다. 종의 멸망을 막기 위한 노력 끝에 일부는 지킬 수 있었지만 한번 밀린 숲이 언제 다시 마저 밀릴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너구리들은 자신들의 생존권이 인간의 결정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하염없이 절망해야 했다. 세상의 모든 도시가 이런 식으로 생성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아무도 사라진 숲과 너구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10억 차익을 챙길 수 있다는 동탄2신도시 롯데캐슬 청약에 300만 명이 몰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