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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Oct 24. 2024

존 오브 인터레스트. 절규하며 불타는 아이들에 대하여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 존 오브 인터레스트

그의 외형은 말끔하고 근사하다. 핏이 잘 맞는 제복을 입는다. 정돈된 헤어스타일과 관리된 피부를 지녔다. 귀여운 아이들과 다정한 아내, 고요한 하인들과 푸르고 넓은 정원이 갖춰진 방이 많고 깨끗하며 인테리어에 신경 쓴 흔적이 다분한 집에서 휴일을 보낸다. 담배를 피우며 사색을 자주 누리고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아이들에겐 한없이 헌신적이다. 그는 아이들의 몸에 뼈와 살이 녹아내린 잿가루가 강물에 흘러내려 묻을까 봐 질겁한다. 아이들을 보트에 태워 먼 강기슭을 거슬러 올라 집으로 돌아와 하인들에게 벅벅 씻기게 한다. 그는 잿가루의 정체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잿가루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전쟁 포로 유대인들을 거대한 소각 시스템에 모조라 집어넣고 수백 수천 수만 수십만 명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소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관리하는 수용소는 화염 속에 불타오르는 아이와 여성과 노인들의 비명과 절규가 그치지 않고 그들의 뼈와 살을 태우며 솟아오르는 연기가 굴뚝에서 끊임없이 하늘을 뒤덮는다. 그의 아름다운 집 바로 옆에서. 그가 사랑하는 가족 바로 옆에서.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그 옆에서 그와 그의 가족들은 한가로이 담배를 피우고 소소한 소풍을 즐기고 텀벙텀벙 수영을 하고 아기 울음을 달래며 평범한 식사를 하고 하루 일과를 정리하며 담소와 농담을 나눈다. 그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 업무를 잘 해내는 군인은 없다.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신속하고 효율적인 유대인 말살 업무를 수행하는 그는 성과를 인정받아 더 큰 규모를 관리하는 임무를 맡는다. 그는 바로 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소각 시스템을 수용소에 도입해서 더 빠르고 원활하게 포로들을 태워 없앨 아이디어를 실행 및 추진 중이었다. 그는 숫자만 나열하며 문서를 넘기며 회의를 진행하는 업무가 지루했다. 그는 눈앞에서 자신이 세운 왕국이 매일 불타오르는 광경 속에서 환희를 느끼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 관리 업무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 업무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흥분에 못 이겨 새벽 시간 아내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자랑할 정도였다. 그는 권력을 이용해 포로를 강간했으면서도 몸에 묻은 흔적을 씻어내는데 바빴다. 그는 성실하고 충직하며 다정하고 명료하고 철저했다. 그 같은 독일인들이 유대인 수백만 명을 화염과 독가스 속에서 밀어 넣고 학살하고 시체를 청소시킨 후 다시 학살하고를 반복했다. 시키는 대로. 일상을 누리며. 가족을 사랑하며. 처음엔 몇 명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누구는 이렇게까지?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죄책감이라는 게 있었을지도 모른다. 소각된 수치를 공유하며 어색함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을지 모른다. 반복되고 익숙해지고 과정에 몰입하고 높은 수치를 올리면 성과를 인정받으면서 점점 자연스러워졌을 것이다. 뼈와 살이 타는 냄새와 아이와 여성과 노인의 마지막 절규가 일상의 냄새, 일상의 사운드가 되었을 것이다. 몰입하는 만큼 이해받고 싶었을 것이다. 뭐가 문제인지 무시하다가 아얘 잊었을 것이다. 나는 그저 맡겨진 일을 충실히 담당했는데 그게 뭐가 문제인가 싶었을 것이다. 죽은 자들의 옷과 신발이 산을 이루고 자신은 전범 재판에 넘겨져 사형대에 오를 때까지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대체 내가 뭐가 문제냐고. 그가 자신의 눈앞에서 자신의 아이들이 비명과 함께 활활 불타 죽는 모습을 감당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수용소 생존자들은 그런 복수를 꿈꿨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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