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진 원작. 애플 TV+ 파친코 시즌2
이미 나라를 잃은 선자(김민하)와 선자의 생애와 연결된 조선인들은 파친코 시즌2에서 더 많은 것을 구체적으로 잃는다. 선자의 남편 이삭(노상현)은 목사의 신분으로 선자와 사랑에 빠지지만 가까운 이의 질시로 투옥되어 모진 고초를 겪고 오랜 기간 후 풀려난 뒤 영영 눈을 감는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쓰면 그저 한 인간의 기구한 삶으로 보이지만 그가 죽음과 가까워지는 것을 거부하며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무너지고 선자와 마주 보며 눈물 흘리고 발버둥 칠 때 인간의 보편적 나약함이 신과 가장 가까운 삶의 지위를 기꺼이 자처한 이에게도 얼마나 공평하고 공포스럽게 드리우는지 실감이 났다. 어느 인간이 죽음 앞에 미련이 없을까. 얼마나 말하지 못한 이야기와 나누지 못한 마음과 표현하지 못한 감정이 넘칠까. 이 모든 것이 죽음 뒤에는 아무 소용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를 옥죄어 이미 죽인 것만 같았다. 그는 마치 자신이 평생 섬기던 신에게 절규하는 듯한 표정으로 죽음을 거부한다. 선자는 그를 얼마나 살리고 싶었을까. 하지만 최고의 실력을 지닌 의사조차 손쓰지 못할 정도로 그는 이미 시기를 놓친 뒤였다. 아마 이것을 인지한 일본 공권력이 집으로 돌려보냈을 것이다. 결국 조선인에 의해 배신당하고 일본에 의해 살해된 생명이었다. 하지만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인 자가 숨을 거둔다고 남은 가족 모두가 생의 의지를 놓아버릴 순 없는 일이었다. 마침 일본 본토를 향한 미국의 대공습이 절정에 이르렀고 선자의 가족과 조선인들은 터전을 떠나야 했다.
얼마 후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지고 그곳에 있던 희생자 중 조선인 사내가 있었다. 이삭의 형이자 경희(정은채)의 남편인 요셉(한준우)이었다. 요셉은 과묵하고 성실하며 정의로운 사내이기도 했다. 그는 일본 권력자를 향한 한 조선 청년의 테러를 막기 위해 나섰다가 같은 혐의로 누명을 쓰고 트럭에 태워졌고 그 순간 거대한 섬광과 함께 핵구름이 살아있고 움직이는 모든 존재를 뒤덮었다. 정신을 차린 요셉의 얼굴은 당시의 피폭으로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다. 거울을 본 순간 요셉의 정신 또한 붕괴된다. 그리고 5년 동안 그는 실내에 칩거하며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다. 주는 밥과 옷을 입고 한없이 비좁은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그가 겨우 눈을 돌리는 창밖에서 아내는 다른 남성과 마음을 나누고 있었다. 요셉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화도 낼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그럴 자격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피폭은 요셉의 얼굴과 육신을 넘어 정신과 남은 생의 시간 모두를 망가뜨렸다. 오랜만에 식구들과 같이 앉은 밥상에서 아내 경희에게 국이 짜다고 지랄하더니 어린 조카들의 깊고 뜨거운 불만을 접수한 요셉은 비로소 5년 만의 외출을 결심한다. 5년 동안 바깥으로 걸어본 적 없는 몸이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땅에 발을 딛고 서 있기만 했는데도 사지가 덜덜 벌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이 두려웠다. 아무리 화상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는 얼굴을 칭칭 감아 쌌어도 보이고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이 거대한 외압이 되어 중력이 되어 창과 칼이 되어 온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선자의 두 아들이 그를 양쪽에서 부축했고 여섯 개의 다리는 하나의 방향으로 천천히 땅을 딛고 공기를 가르고 한 걸음씩 나아갔다.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처음 발을 딛었을 때도 이보다는 쉬웠을 것 같았다. 어둠은 비로소 내려가고 요셉은 주변을 바라본다. 사람들이 보였다.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를 하는 어른들과 야구공을 던지고 치고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요셉은 살아있었다. 요셉이 존재하는 세상이 회복되고 있었듯이.
죽고 다치며 사라지는 조선 사내들을 가까이 비추는 파친코 시즌2는 조선 여성들이 어떻게 생존하였는지도 생생하게 드러낸다. 선자는 전쟁과 가난 속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 쉼 없이 일한다. 선자가 잠시라도 멈춘다면 주변의 모든 생명이 소멸할 것 같았다. 피난 간 시골에서 거친 논일을 하고 돌아온 폐허를 복원하고 정신없는 시장에서 쉴 새 없이 장사를 하고 김치를 팔고 첫째 아들의 대학교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잠을 줄이며 설탕물로 사탕을 제조한다. 남편을 잃고 아들이 떠나도 삶은 계속되어야 했다. 현재가 그들을 잊는다 해도 조선 여성들의 삶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파친코는 남성 중심 역사관으로 기울어진 현재가 지우려고 애쓴 여성들의 이미지와 움직임을 복원시키고 입체적으로 살과 뼈와 영혼을 연결하며 생명을 불어넣는다. 격변하는 전쟁 역사에서 희생은 남성들의 전유물만이 아니라는 것을 부드럽고 강인하게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