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소 쿠아론 감독. 디스클레이머
내 삶을 남에게 설명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상처받은 사람들은 자신이 상처받은 이유를 타인에게 듣고 싶어 한다. 사과받고 싶어 한다. 자신이 왜 이렇게 화가 나고 억울하고 미칠 것 같은지 타인에 의해 납득되고 싶어 한다. 다른 시공간에서 벌어진 혈육의 죽음. 믿어지지 않아서 아무것도 믿지 않고 자신이 조립한 공상으로 기승전결을 완성한다. 모든 연민과 선의가 죽은 자에게 향한다. 이 공상이 완결되기 위해서는 거대한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반대편의 거악이 필수적이다. 가해자. 범죄자. 악마가 필요하다. 그래야 왜 내가 없는 곳에서 아들이 죽었는지 겨우 이해할 수 있다. 나 대신 누군가를 대신 죽도록 미워할 수 있다. 나 대신 누군가에게 복수할 수 있다. 죽음으로 뒤덮인 삶에 진실은 필요 없다. 내가 믿으면 그게 진실이다. 내가 지어내면 그게 진실이다. 내가 받아들이면 그게 진실이다. 이성과 허상은 동시에 작동하지 않는다. 아들을 잃은 어미는 그렇게 믿으며 아들의 뒤를 따라간다. 자신이 완성한 이야기를 남편이 발견해 주길 바라며. 자신의 고통과 슬픔이 완성한 허상을 진실로 믿으며. 아들과 아내를 동시에 잃은 남성은 복수를 실행한다. 길게 쓰인 유언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복수의 화신이 되어 가해자를 지목하며 찾아간다. 사과를 바란게 아니었다. 남성은 자신과 똑같은 고통을 겪게 하고 싶었다. 가해자의 아들을 죽여서.
가해자로 지목된 여성의 남편은 검증되지 않은 진실을 듣고 경악한다. 지금껏 자신의 내면에 웅크리던 억눌린 열등감이 비로소 폭발한 기회를 얻었다. 역시 너는 그런 여자야. 너는 용서받을 수 없어.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나는 그렇게 너에게 배려했는데. 넌 오직 너만 알고 너의 명예와 사회적 성공에만 목을 매달며 가족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지. 너의 과거가 이제 찾아와 너의 진실을 말하고 있어. 넌 범죄자이고 악마이며 부정한 여자이고 엄마와 아내의 자격이 없어. 내가 너에게 그렇게 잘해줬는데! 넌 그저 내가 없을 때 젊은 놈이랑 놀아나며 가족을 내팽개친 몹쓸 인간이야. 니가 지금 당한 모든 폭력은 마땅하기 그지없어. 넌 니가 망친 사람들에 대한 복수를 감당해야 해. 넌 니가 파괴한 삶의 대가를 치러야 해. 넌 우리 아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죄의 형벌을 받아야 해. 넌 나를 결혼 생활 내내 무시했던 무례에 대한 고통을 되돌려 받아야 해. 이때다 싶었는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온갖 순간과 감정을 나눴다고 믿은 인간마저 기다렸다는 듯이 온몸에 쇠로 달군 낙인을 찍고 있었다.
어떤 진실은 너무 고통스러워서 고백과 토로의 기회를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새파란 청년의 죽음을 방치한 사람, 어린 아들을 두고 부정한 짓을 저지른 사람, 사려 깊은 남편이 없는 사이 불륜을 저지른 사람, 캐서린(케이트 블란쳇, 레일라 조지 도노프리오)은 그토록 두려웠던 모든 혐의를 다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입을 열 수 없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 기억이 흐려진 게 아니었다. 그때의 기억은 누구의 입으로도 다시 꺼내어져서는 안 될 경험이었다. 그게 유일하게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였다. 이 진실이 공론화되면 캐서린의 모든 삶의 구성요소는 완전히 끝장날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지탱하던 물리적 감정적 모든 것들이 단숨에 허물어질 것만 같았다. 그 청년은 천사 같은 아들이 아니고 자신은 부정한 여성이 아니며 최악의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엔 너무 많은 설명과 맥락이 필요했다. 캐서린은 진실을 틀어막고 감내하며 자신의 일부를 영영 죽임으로써 모두를 지키는 방식을 선택했고 오랜 시간이 지나 돌아와 자신의 모든 시간과 역사를 붕괴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최악의 위기 속에서 지인들과 상황을 공유하며 캐서린은 자신을 향한 각각의 태도를 명확히 구분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복수를 향한 집념과 쾌감에 휩싸여 지내던 남성은 절대적 무지를 깨닫고 소리 없이 경악한다. 얼마나 헛된 시간을 보냈나. 죽는 순간까지. 복수심과 증오와 억울함은 얼마나 무가치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