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승권 Sep 10. 2024

너의 손가락을 요리해 줘.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

타인에 대한 사랑을 배운 적 없는 인간은 타인에 대한 정의할 수 없는 자신의 감정을 사랑으로 중간 결론 내린다. 그리고 타인을 사랑한다고 믿는 자신의 모습과 사랑에 빠진다. 타인과 사랑에 빠졌다고 여기는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나는 사랑을 하고 있고 그러므로 이 사랑을 돌려받을 자격이 있다고 다독인다. 끊임없이 계산한다. 내가 이만큼 사랑에 빠졌으니 당신도 내게 어떤 사랑의 무언가를 되갚아야 해. 돌려줘야 해. 내가 느끼게 해줘야 해. 내가 사랑할 조건을 갖춰야 해. 내가 사랑할만한 사람이 되어야 해. 내가 기준으로 정한 것들을 갖추며 내게 사랑을 받을 준비가 항상 되어 있고 그런 나를 사랑해줘야 해. 사랑과 통제를 헷갈린다.


경찰서 안에서 범인은 경찰의 통제 안에 있었지만 에밀리(엠마 스톤)가 실종된 후 앤드류(제시 플레먼스)는 에밀리를 통제, 아니 사랑할 수 없었다. 에밀리가 그리운 건지 에밀리를 더 이상 사랑 아니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이 불쌍한지 알 수 없었다. 하루종일 슬펐고 하루종일 우울했으며 이런 자신의 붕괴를 이해받고 싶어 했다. 가장 가까운 동료이자 친구는 그를 걱정했다. 그렇다고 그와 같이 나온 섹스 비디오를 같이 보며 달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앤드류가 원하니 어쩔 수 없었다. 앤드류의 자살을 막기 위한 유일한 방식이라 여기며 참아야 했다. 그렇다고 에밀리가 돌아오진 않았다. 그러다 실종된 에밀리를 찾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에밀리는 조난된 후 개들이 사는 섬에서 포로처럼 지냈다고 했다. 뭔가 이상했다. 앤드류는 돌아온 에밀리를 의심한다. 자신에 대한 정보를 잊거나 헷갈리거나 다르게 기억하는 에밀리를 의심한다. 그러다 에밀리가 아니라고 단정 짓는다. 자신이 기대한 만큼의 사랑을 돌려주지 않는 에밀리를 자신이 사랑해 줬던 에밀리가 아니라고 결론 내린다.


돌아온 에밀리는 자신에게 냉담한 앤드류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헌신한다. 앤드류는 같이 지내면서도 식사와 대화를 거부한다. 에밀리는 애가 닳았다. 앤드류가 원하는 뭐든지 해주고 싶었다. 앤드류는 요구한다. 너의 손가락을 잘라 요리해 줘. 에밀리는 자르고 기절하고 요리하고 가져다준다. 앤드류는 에밀리가 미쳤다고 소문낸다. 더 원하는 것을 묻는 에밀리에게 앤드류는 너의 손가락은 별로였으니 영양소가 많은 너의 간을 꺼내서 달라고 한다. 에밀리의 표정이 굳는다. 다음 장면에서 에밀리는 피를 흘리며 죽어 있고 바닥에는 막 꺼내어진 간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축축하게 쏟아져 나와 있었다. 간을 꺼낸 에밀리는 누구였을까. 앤드류는 막 도착한 다른 에밀리를 끌어안는다. 먼저 돌아온 에밀리는 누구였을까. 앤드류는 왜 무리한 요구를 했을까. 그가 에밀리이든 에밀리가 아니든 왜 그런 방식으로 시험하거나 대가를 치르게 했을까. 이것이 실종된 시간 동안 가슴 졸였던 자신에 대한 보상으로 여긴 걸까. 사랑한다며 식용을 위한 장기를 요구하는 게 무슨 사랑인가. 에밀리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앤드류는 스스로 죽었을까. 여기서 본 모든 것들이 우화이자 풍자라면 현실의 앤드류들은 어떤 착각과 망상 속에서 얼마나 많은 에밀리들을 죽이고 있는가. 앤드류가 영원히 잠들기 전 꾸는 마지막 꿈같은 이야기. 심지어 이 에피소드는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의 핵심도 아니다.

이전 18화 피도 눈물도 없이. 리볼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