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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Jul 20. 2024

파묘 VS 미래의 골동품 가게,사바하,곡성,랑종  

장재현 감독. 파묘

파묘 덕분에 웹툰 미래의 골동품 가게를 알게 되었다. 장재현 감독의 전작 사바하는 국내외 오컬트를 통틀어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작품이었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보다 음습하고 현실적인 면이 더욱 그러했다. 그만큼 파묘에 대한 기대치는 정점이었다. 구아진 작가의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파묘를 당장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엄청난 발견이었다. 연재는 아직 진행 중이지만 수년치 분량의 이야기를 단숨에 삼키며 덜덜 떨어야 했다. 연재와 만화라는 특성 탓에 (한정된 시간 내 최대치의 몰입을 이끌어 내야 하는) 영화와 달리 긴장을 해소시키며 호흡을 고르게 하는 장면들이 있었지만 가공할 작화와 방대한 참고 자료로만 봐도 독자의 간장을 움켜쥔 채 놔주지 않고 있었다. 이우혁 작가의 퇴마록은 수십 년이 지나 희미했고 오컬트 공포의 클래식 오멘도 마찬가지였으며 사바하, 곡성, 랑종을 제외하면 미미했다.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인사동 상점을 연상시키는 제목이 좀 갸우뚱했지만 당장 넷플릭스에서 판권을 사가 삼체 같은 오리지널 시리즈를 만든다고 공표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스케일과 스토리텔링, 캐릭터와 서사, 구성과 스펙터클을 담고 있었다. 공포물에 무덤덤한 편인데도 미래의 골동품 가게에서 마주한 커다란 귀신의 얼굴이 잔상처럼 남아있다. 텅 빈 까만 눈과 기괴한 표정이 각인되었다. 파묘에 대한 구체적인 기대를 가진 건 아니지만 미래의 골동품 가게의 충격과 공포를 경험해서 그런지 아무리 파고 파도 험한 것이 제대로 넘어오지 않고 있었다. 천만관객이라는 흥행 스코어는 쉽게 간과할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무엇이 중했는지 잘 더듬어지지 않는다.


파묘의 명분이 돈에서 후손들의 안위로 바뀔 때 일본 귀신과 한국 무속 비즈니스 관련 종사자들과의 대결은 간절함이 느슨해진다. 한때 최강 빌런 후리저와 손오공 프렌즈들의 사투에서 느꼈던 긴장감까지는 아니었어도 인간 대표팀이 입은 결정적 손실이 입원한 봉길(이도현) 하나라는 점은 호흡을 가다듬을 정도로 위태로워 보이진 않았다. 불길에 홀려 넋이 나가고 여기저기 흩뿌린 생선을 뜯어먹고 장신을 휘저으며 숲을 어둠으로 뒤덮었지만 말도 많고 약점도 많아 보여서 위협적이지 않았다. 무당 화림(김고은)의 귀기로 날렸으면 더 좋았겠지만 딸 결혼식을 앞둔 어느 아버님(최민식)의 목숨 건 투쟁 덕분에 대형 일본 귀신은 한국의 척추에서 적출당할 수 있었다. 오컬트 장르 특유의 비극적 마무리와 찝찝한 여운은 없었다. 친일파, 재벌, 귀신, 존재한다고 하지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긴밀한 융합의 시도는 새로웠지만 기시감이 강하고 현실 이입의 여지가 미약했다. 앞서 언급한 사바하, 곡성, 랑종은 다른가. 다르다. 걷잡을 수 없이 파고든 사이비 종교(사바하), 동네마다 있는 이상하게 어둡고 미친 사람들(곡성), 가족마다 숨기고 있는 끔찍한 비밀들(랑종)이 그렇다. 파묘의 시대를 뛰어넘는 무당 한일전은? 화림과 상덕의 목숨이 소멸되었다면 과거 판을 짠 음양사의 파괴력과 더불어 여전히 잔존한 일제의 악독함이 좀 더 오래 서리지 않았을까. 오랫동안 기대했던 하지만 단 1명의 관객으로서의 입장이다. 하지만 덕분에 미래의 골동품 가게를 알게 되어서 고마운 마음이 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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