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퇴근 3시간 전

바나나 소이 머핀 2,900원

by 백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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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혼자 먹었다. 현찰은 없었고, 카드는 쓰기 싫었으며 머니클립엔 천 원짜리 네 장과 만 원짜리 문화상품권, 5천 원짜리 이마트 상품권뿐이었다. 몇 주전 그랬던 것처럼, 커피숍을 검색했다. 회사에서 떨어진 곳.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편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곳. 15분 도보 거리에 스타벅스가 있었다. 스타벅스는 이마트 상품권을 받는 곳이었다.

뚜벅뚜벅 걸었다. 날씨는 한결 나아져 있더라. 전날보다. 전전날보다. 2층 스타벅스는 한산했고, 오늘의 커피와 머핀을 시켰다. 오늘의 커피 숏 사이즈 2,800원, 바나나 소이 머핀 2,900원. 이마트 상품권+1,000원으로 결제했다.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또 커피숍 혼자 와서 커피와 머핀 시키고 이 지랄 ㅋㅋ”. 답문이 바로 왔다. “ㅠㅠ 난 회사 사람들과 삼겹살 먹는다 ㅋㅋ” 초등학생 대화가 문자로 오가던 중 점원이 부른다. 나왔단다.

세 개의 의자가 원탁을 둘러싼 창가 자리. 왼편에 재킷을 걸고. 목도리와 장갑은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적적해서 아이팟 터치를 꺼내 미드를 재생시키고, 답답할 거 같아 이어폰은 안 꼈다. 커피를 홀짝거리고 머핀 테두리를 포크로 밤톨만 하게 떴다. 어색하진 않다. 북적거리는 식당에서 혼자 먹는 밥이라면 모르겠지만 커피숍이나 패스트푸드점은 오래전부터 익숙하다. 그냥 마지막 점심이니까. 나의 출근이 오늘 까지라는 것을 거의 모르고 있을, 같이 점심 먹는 사람들에게 평소 같은 미소와 웃음을 띄우며 같이 자리를 하다간 오히려 머릿속이 복잡해질 것 같았다. 들키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 소량의 미안함. 아쉬움. 이런 게 어떤 표정으로 단어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까 봐. 그래. 잘한 거야.

멍하니, 창 밖의 교차로를 응시했다. 별 생각 안 들더라. 조바심도 마음의 평화도 후회나 아쉬움도 다가올 날들에 대한 두려움도 대책도 이전의 시간들을 지나며 사무치도록 곱씹었던, 온몸으로 부닥치며 감내해야 했던 말들이었다. 기가 막혀 욕도 안 나왔고, 아무리 거친 욕을 상상해도 해소되지 않았다. 사회생활하다 보면 생길법한 일일지도 모르지. 남의 말처럼 여겼었는데, 내가 주인공이 되고 다음 대사와 동선을 짜려니 정신과 육신이 산산조각 나는 것 같더라. 식사는 반으로 줄고, 몸은 말라갔다. 어떤 일이든 몇 개의 짧은 문장으로 그려질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헤드헌터가 연거푸 했던 말이 떠오른다. “오해와 진실은 다른 법이니까요.” 난 지금 그 오해로 인해 직장을 옮기는 중이다.

오늘 -정확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으로부터 5시간 안에- 어떤 연락이 오느냐에 따라 내일부터의 심정은 다시 재설정되겠지만. 어떤 분노도 동요도 원망도 일렁이지 않는다. 2시간 후쯤엔 다른 면접을 위해 일어나야 하고. 그 길로 나가면 지금 여기에서 지나온 95일 동안의 여정 끝이다. 아직 고민 중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인사를 하고 나가야 할까 라는 점. 손을 흔들거나 눈으로 인사하는 건 분위기 어수선해질까 봐 할 건 아닌 거 같고, 쪽지로라도 고마운 인사를 남겨야 할지 아님 그냥 조용히 나가고 나중에 메신저로 미안한 인사를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건지도.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면 누군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소소하고 일상적인 대화만으로도 당사자는 위로를 얻는다. 난 그 ‘난감한’ 당사자였고, 이방인의 수줍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준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그들이 고마웠다. 난 경력의 3개월을 공백으로 남겨야 했지만, 아깝지 않게 해 준 건 시간을 나눈 사람들이 있어서였다. 시답지 않은 소재로 웃고, 떠들고, 농담하고. 여기서 그 시간들이 제일 좋았다. 제일 행복했다. 제일 고마웠다. 그래서 이렇게 미안하다.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떠나서.

두 개의 회사 사이에서 거처를 고민 중이다. 한 곳은 조금 난관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를 통해 더 애착이 생겼고, 한 곳은 의외의 연락으로 인해 또 한 번의 면접을 남기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11일에 지금 이곳에 들어와 해를 넘기고 1월 14일까지, 아주 길고 많은 문장들이 필요한 일들을 겪었다. 몇몇 지인들은 그러더라. 어떤 문제든 자신에게 비롯된 것이라고. 하하하하. 교만과 오만의 선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60년 후에 내 손자에게도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난 아니었다고. 그리고 이번만큼은 어떤 문제의 근원을 나로 돌리는 게 너무나 어려웠다고. 설명조차 하기 힘든 그 일은 끝내 해결점을 찾지 못했고, 모두에게 상처만 남기고, 난 지금 이렇게 황폐해진 마음으로 다른 적지를 찾게 된 거라고. 한 번만 날 믿어주는 척만 했어도, 이런 결정은 더뎠을 텐데. 이번 겨울은 유난히 한숨의 농도가 짙었다.

친구가 어제 그랬다. “내가 모든 정황을 파악할 수는 없어 직접 만나서 이야길 들어봐야겠지만 넌 마치 넌 잘못 하나도 없고, 니 주변으로 인해 다 망쳐진 것처럼 구는 것 같다.” 친구 말은 일리가 있었다. 난 내가 처했던 상황을 말과 글로 다 풀어낼 자신이 없었고 그러지 못했다. 원인-문제-해결로 풀기엔 주변에 보이지 않게 깔린 맥락이 너무 많았다. 솔직함이 주장으로만 받아들여질 때의 기분은 경험하지 않은 이들에겐 너무 낯선 것일 테다. 내 탓으로 하면 쉽겠지. 얼마나 쉬워. 그래 내가 잘못한 거다. 오해든 뭐든 나로부터 시작된 거다. 그래. 애초에 이력서 파일을 첨부한 메일 보내기 버튼을 클릭한 게 잘못이다. 그게 잘못이다. 이러면 모두가 편해졌을까?

며칠 전 본 EBS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하버드대 강의에서는 개인의 소유권을 가지고 토론을 벌였었다. 나의 소유권은 나에게 있는가? 사회에 속한 나에게 있는가? 나의 나인가? 사회의 나의 나인가? 한 학생이 말했다 "어느 누구도 사회 안에서 자신을 온전히 소유하지 못한다. 누군가의 나이고, 어디에 속한 나니까." 머리가 조금 복잡해졌다. 난 보다 나의 나이고 싶고 그렇게 여겨왔는데. 앞으로 두 시간이 지나기 전에 문 밖을 나설 것이다. 슬프고 어렵고 복잡했던 것들은 알아서 잊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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