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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Oct 04. 2016

GQ 코리아 10주년을 축하하며

이런 날도 있었다, 지금과는 다른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GQ 에디터가 되고 싶었던 날들이 있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는 말에 오차가 적었다면 난 아마 평일 아침마다 논현동 두산타워 방면 버스에 승차하고 있었겠지. 판타지가 가득했다. 여자 친구(지금의 아내) 말고 다 바꿀 수 있어. 정 그래야만 한다면 조금의 살점이라도 내어줄 수 있을지 몰라. 이미지와 텍스트를 가장 화려하게 가지고 놀 수 있는 업이 광고라고 여겼고, 아득했지만 길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이행해가며 끝내 카피라이터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만약에 대학교 재학 중에 내가 GQ를 접했더라면 수정되었을지도 모르겠다. 2006년 겨울이 아닌 조금 더 빨리 만났더라면, 난 지금과 조금 다른 길을 걷게 되었을 거라고 상상했었다. 지금도 이따금.


지금도 한 달 한 권 경탄을 금치 못하며, 경외감을 숨기지 않지만, 꿈을 꾸었던 그 새파랗던 때엔 GQ는 단지 400여 페이지짜리 잡지가 아니었다. 백 개의 도서관과 천 개의 미술관, 만 개의 백화점과 그 이상의 도시 문명이 꿈틀거리는, 마치 단 한 번도 겪지 못했으면서도 오래전부터 가장 염원했던 것처럼 느껴지는 다른 세계였다. 담배와 술냄새로 찌든 서울 하늘 아래에서도 잃지 말아야 할 예의범절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모두가 입 다물고 있다고 숨겨진 것이 그릇된 것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고, 의복과 액세서리의 가격을 떠나 갖춰야 할 것은 쉽게 무시되고 있는 매너라고 전하고 있었다. 문장과 사진들로부터 변화는 요구되고 있었다. 이게 조금 더 옳을 거라고 믿게 하면서. 


긴밀히 오래 가까이하다 보니, 구성원들의 움직임도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새로운 이름들을 기억하고, 떠나는 이들을 아쉬워하게 되었다. 누락된 페이지는 없었지만 자리의 공백을 느낀 적도 있었다. 이젠 굳이 마지막 문장 뒤에 이름을 확인하지 않아도 누구의 글이구나 알 수 있다. 알고 지낸 지 1년, 2년, 3년, 4년. 2011년 3월, GQ가 10주년이라고 했다. 내가 첫사랑과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는 동안, GQ는 121권의 책을 만들었다. 그중 50권이 이충걸 편집장님의 책들과 함께 옆에 꽂혀 있고, 그 50권 중 한 권엔 내 글이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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