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어
꿈을 꿨다. 처음 꾸는 꿈. 무서움에 눈을 떴다. 심장이 빨리 뛰고 있었다.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내게 이 시간에 웬일이냐며 무슨 일 있냐며 먼저 물었다. 아, 당신. 별일 없어서 다행이었다. 평생 짓던 토마토 농사는 올해 토질이 나빠 수확이 안 좋았다. "잘 계셔야 돼요." 사랑한다는 말이 입술 안쪽까지 닿으려다 눈물이 나올 거 같아 관뒀다. 그와 나눈 수십 가지 추억이 동시에 습격해오는 기분이었다. 날 낳았고 키웠으며 먹였고 가르친 사람. 아내가 스무 살 이후 내 생의 전부라면 그전엔 그가 내 전신이었다. 높고 넓은 어깨에 날 번쩍 들어 태운 것도, 나이프와 포크 쥐는 법을 가르친 것도, 쉼 없이 책 읽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 것도, 지인들과 허물없이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글을 쓰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전부 그였다. 일하는 남자, 밥 짓는 남자, 삼십 중반의 나이에 두 아이를 (홀로) 키우던 남자가 내가 기억하는 그였다.
유년기, 그에 대한 가장 애잔하고도 강렬한 기억은 비 오는 날마다 소환된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난, 그의 오른손이 피 묻은 흰 수건으로 감싸있는 것에 소스라쳤다. 농사일 중 모터 기계에 의해 그리 되었다고, 그는 무슨 동네 시장에서 아는 사람 만났다고 이야기하듯 무심히 말했다. 이후, 그의 가운데 손가락은 조금 짧아졌다. 뭉툭해진 끝부분, 보고, 만질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피 묻은 수건, 별거 아니니 신경 안 써도 된다는 듯의 말투. 그는 그런 사내였다. 소주가 들어가야 웃음소리가 호탕해지는 사내. 장성한 자식이 과장된 사회적 성과를 늘어놓을 때마다 늘 겸손하고 중심을 잃지 말라고 걱정하는 사내. 내 아내에게 이제 아가~라고 부르는 사내.
일찍 깬 잠이 다시 들지 않는다. 꿈에 놀란 눈이 다시 감기지 않는다. 출근을 준비하며 다시 전화할 생각이다. 난 연락을 자주 하는 자식은 못 되지만, 표현을 아끼는 무뚝뚝한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사랑한다는 말은 해야겠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날 사랑했던 남자. 나의, 아빠에게.
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난 아이가 되어, 20년 전보다 훨씬 굵고 낮아진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아빠 제가 사랑하는 거 알죠? 저 정말 깜짝 놀랐어요.”
목소리만 들어도 충청도 사람, 그는 낮고 느린 음성으로 답했다
“허허, 그럼 알지. 아빠는 괜~찮어.”
그가 그 자리에서 괜찮다는 게 이렇게 다행일 줄이야.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