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떠나는 나의 노동자 동지들에게

by 백승권

상처 받은 눈을 가졌다고

세상이 쪼개져 보이지는 않을텐데


우린 온통 악이 분출하는 땅 위에서

얼굴은 젖고 몸은 많이도 태워먹었죠


화상이라서 흉터는 오래 남을테고

이걸 가까운 서로에게 나눈다 하여

이미 수신된 비극이 삭제되는 것도 아니고

일상의 가해자들을 모두 형장으로 보내려면

정권이 다시 바뀔 시간이 필요할 것 같고


감당할 수 없는 상황과

감당하지 못하는 무력감 속에서 우린

1년이 넘도록 같이 점심을 먹었어요

이 지경이 되기까지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신분 명확한 빌런과 조상들을 욕하며


바람이 멎어도 물결은 섞이고

하루종일 울어도 달은 떠야 해서

그동안 나이를 먹고 커피도 골라 마시며

기특하게도 더 나은 인간이 되려고

그렇게도 애썼습니다


지진을 어떻게 피하겠어요

행성은 어차피 언젠가 갈라지며 파멸할텐데

용암을 어떻게 식히겠어요

우리가 폭우도 아니고 나중에 화석연료나 될텐데

한결 같이 지랄맞았던 재해를 우린

하나도 피하지 못했네요

골절 부위와 허무한 분노만 나눴지


아무것도 나아지지 못했고

그래서 이렇게 시공간이 분리되는

시기가 도래했지만 퇴사가 아닌

퇴원, 출소, 탈옥이라는 말로

서운함을 달래보기로 합니다


미친듯이 웃고 떠들고 욕하고 경청하고

같이 분노하고 저주하고 맞장구치고

직접 바꿀 히어로는 아니어도

다만 우리 곁 좁은 세상의 평화라도

간절히 바란 적 많았죠


매일 볼 수 없었고

앞으로는 조금 더 그럴테니 우리


늘 다시 이야기해요

쉼없이 흔들리는 동안

내가 제일 많이 의지했습니다


2025. 06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