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양간은 불타고 있는가

by 백승권

어떤 긴 생각은

정리가 되지 않고

글이 되기도 하고


정리가 되지 않아서

글이 되기도 해요


이 글은

사건의 박제보다는

부유하는 생각을

단어와 문장이라는 핀으로 고정하여

더 이상의 현기증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어요


팩트의 열거보다는

반응의 관찰 및 분석

후유증에 대한 기록인데


기원을 거슬러 오르려다가

이걸 집요하게 따라갈 경우

결국 우주와 인류의 탄생까지

갈 듯하여 수위를 조율 중이고


한때는 나도 저렇게

보일 수도 있었으려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쩌다 만나서 서로 이렇게

몹쓸 꼴을 만인에게 노출하나 싶기도 하고


특정 대상의 탓으로 몰고 가려면

한도 끝도 없는 혐오만 쌓여 관두고


가해와 용서, 체념보다는

장기적으로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고

공공의 피해를 줄이고

가시적인 범주에서 벗어나려면

개인적으로 필요한 디테일이 있을까 싶다가


이게 다 이상 기후와

여름의 온도와 습도

재벌 3세로 태어나지 못한 불운

등등으로 탓을 돌리면

좀 나아지나 싶다가


있을 수 있는 일

당할 수 있는 일

정도로 중간 정산이 되고


그러다 이때 이런 대응에

좀 더 신중했다면

융단폭격 피해는 덜하지 않았을까 하는

소 잃고 외양간 정비하려는

전략 수정까지 접근하게 되고


이제 다 도망가고

남은 소도 없는데


외양간을 다 불태우기엔

외양간의 다른 동물들이 가엾고


며칠 전

스스로 정한 인간 규격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려고

선한 사마리아 코스프레를

시도하려다 그만두었고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이 명제의 교훈을 잊지 않았던 게

다행이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없다

바람을 막지 않는 한

파도는 어김없이 덮치고

지구를 벗어날 능력도 없고

벗어난다 해도 거기에 바람이 없을까 싶기도 하고

허나 닥치는 파도를 즐길 정도의

서핑 실력도 없고 (타 본 적 없음)


다시 닥치면

다시 맞겠네

정도의 비참한 마음


인간을 향한 연민과 증오가 같이 깃들 때

그가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 안도하고

이제는 연구 대상으로 살피려는

스스로의 태도가 우습기도 하고


오랜 노력이 단숨에 재가 되는

사례를 보다 보니


내가 처음에 확신이라고 했나

세상에 그런 건 없겠구나


지겨운 서글픔

서글픈 지겨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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