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줄 알았던 저의 모든 화살

by 백승권

제가 감히

제가 가진 이 작디작은 상자에

당신을 담으려고 했나요

당신을 구겨 넣으려고 했나요

당신을 깨뜨려서 조각이라도

쓸어 담으려고 했나요


강퍅한 마음에 그런 시도를

속으로라도 품으려 했나요

그런 기미를 노출하려 했나요

연약함을 빌미로 간청하려 했나요

이 작은 분홍신을 당신의 발에 끼우려고


극도로 억제하고 자제하여

숨길 수 있었다면 다행이지만

이런 안도조차 얼마나 어리석을까요

우리가 시간을 두고 서로를 지켜봤어도

이토록 다른 물질과 성분과 구조로

설계되고 제작되고 누적되고 기워지고

완성되고 허물어지고 다시 조립된 존재들인데

그걸 어떻게 이 작고 기이한 틀에

당신을 맞추려고 했나요


(물론 반대의 경우 나는 모든 것을 걸고 시도하겠지만)


완전히 도달 불가의 영역이고

저는 애초 완전하지 않았으며

단 한순간도 완전의 근처조차

머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찢어진 카펫과 삐걱거리는 문

벗겨진 페인트와 낡은 소품들

깜빡거리는 조명과 오래된 가구들로 즐비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했으면 하는 시공간으로

초대하려고 했어요. 촛불도 제대로 켜지 못하면서

의자를 적당한 타이밍에 뺄 줄도 모르면서

맘에 드는 메뉴조차 제대로 모르면서


빈번한 자학을 핑계로 스스로에게 관대했고

고백과 고통과 고뇌를 혼동하며 발표했어요

왔다 갔을까요. 알아채지 못했어요

왔다 가지 않았더라도 알아채지 못했겠죠


가둘 수 없는 것은 가둘 수 없고

예언할 수 없는 것은 예언할 수 없으며

보이는 것은 언제까지 보일지 알 수 없고

수많은 대화는 파도 앞의 모래와도 같겠죠

차라리 파도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가 파도라면 당신이 달이라면

저는 행성에 붙어 출렁거리며 당신의 중력에 기대

낮과 밤을 지나며 행성의 무늬를 바꿀 텐데


빗나간 줄 알았던 저의 모든 화살이

아직 과녁에 닿지 않았을 거라는 상상은

여전히 따뜻해요


착각은 깨지 않을 때 더 아름답겠지

깨지 않고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진실이 상처여야 한다면

조금 기다려 달라는 간청을 하며


꽤 자주 이 모든 것이

환상의 일부라는 이론을 믿고 싶어요


의식을 의식하며 지내기엔

순간은 너무 길고 하루는 너무 고되며

밤은 너무 그립고 낮은 너무 버거워요


제가 원하는 사람과

제가 원하는 시간에

제가 원하는 대화를 나누며

제가 원하는 놀이를 하고 싶어요


(잠시 정신을 차린 후

방금 쓴 네 줄을 다시 읽은 후)


세상에

이게 제가 가진 상자였군요

이토록 작디작았다니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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