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없는 비극

by 백승권

시간이 납으로 만든 이불 같아요


인생이 비극의 구렁텅이로

돌진하고 있을 때

깨달을 수 있는 진실은

아무 소리도 없다는 거예요

마치 진공 상태 같아요

우주에 홀로 떠 있는

비행사 이미지도 너무 거창하고

중세 시대 느리게 화형 당하는 장면에서

비명과 몸부림과 느리게 타오르는

불씨가 보이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과 비슷해요


아무도 듣지 못해

눈을 감으면

외면할 수 있어요

등을 돌리면

가던 길을 갈 수 있어요

머리가 울리는 비명이

따라오지 않을 테니

꿈도 꾸지 않을 거예요

소리가 기억으로

각인되지 않았으니


아무도 없어요

그가 느리게 타 죽어도

소리가 없어요

진정한 비극은 입이 없으니까


이걸 처음엔 잊어요

발밑에 불길이 느껴질 때

두렵지만 애써 누르며

별일 없을 거라며

있어봤자 지나간다고

성공한 자들이 마이크를 쥐고

하는 똑같은 이야기처럼

지나간다고 지나간다고


그럴 수 있어요. 그들에겐

아닐 수 있어요. 내겐


고문에 대한 관심이 있어요

신체훼손을 견디는/가하는 심리에 대해

여러 영화를 보며

관련 텍스트를 읽으며 축적된 거예요

화형은 중세 마녀 사냥 역사가

크게 작용하기도 했고


중국 황실의 적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에 대한 기록도 그렇고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행위 중에

고문만큼 난해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유사 사례가 아우슈비츠 학살이나

전쟁 범죄 등이 있겠죠


인간이 저기까지 갈 수 있구나

기록으로 남겨진 게 저 정도구나

남겨진 소리도 없이


잘 고쳐지지 않는 나쁜 습관 중

찢어져 피가 날 때까지

피부를 뜯는 게 있어요

얇은 반창고를 붙일 때도 있고


고문당했던 사람들에게 그런 건 없었겠죠

여기까지 당하고 죽느냐

여기까지 당하고 더 당하느냐


지금 여기서 뭘 더

할 수 있는지 잘 생각이 안 나요


그리고 저는 괜찮아요

글만 이러는 거예요


누구랑 이야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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