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설계자의 관점과 해석에 대한 반성

by 백승권

틈 선 간격

관계는 사이가 있어요

나와 나의 관계에도


보이지 않아도 닿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고

들리지 않아도 같이 있는 듯 여겨질 때가 있고

실제로 없지만 소리와 질감, 이미지가 부유하고

그림자가 없어도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며

그렇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선과 면으로 우리는

연결되어 있거나 감겨 있거나 묶여 있거나

감싸 있거나 둘러 싸여 있거나 덮여 있다고

그런 믿음으로 유지될 때가 있어요


그 믿음으로 영원의 거리를 좁혀

밀착의 수준으로 당기는 경우가 있어요


적확한 예시는 떠오르지 않지만

실감할 때는 대부분 늦어요

실감한다는 것은 이미 발생했다는 것

현상이 발생하여 밀려와서 내게 닿았다는 것

실감은 반응이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반응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에 대한 반응


아까는 걷다가 선을 느꼈어요

전에도 이런 적 있었나

기억나지 않아요

하지만 없었다고 단정하기 힘들어요

기억은 대부분 해석이고

교차 확인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내가 직감이 뛰어난 적 있었나요

불안한 이유는 한번 사이가 생기면

균열이 시작되면 금이 가면

좁히기 힘들다는 것을 알아서

그런 기회가 남은 생에 희박해요


우리의 남은 삶은 며칠이나 남았을까요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마주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얼마나 서로에게 우리가 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우리라고 인지되면 그게...

의심의 장막을 거두자고 협정을 맺었지만

나는 종종 날아간 부메랑이 돌아오지 않고

먼 하늘만 바라보다 해가 져서

집으로 혼자 돌아가는 상상을 해요


모든 불안이 기록될 순 없고

쓰고 싶지 않았어요

아무도 못 알아들을 테니


글이 씨가 된다는 게 아닌

씨가 날아와 글이 될까 봐

허약한 두려움이죠


우리는 복권이 아니고

문장은 예언이 아니니

이건 그저 빗나간 이야기라고


무슨 소리야 대체

자기도 정리 안된 걸

잉크 없는 프린터처럼

드드드득거리고


다시 이야기해 볼게요. 단순해요


우리의 관계를 바라보는

저(만)의 관점은 저 스스로 설계한 거겠죠

저의 인지와 해석에 감정을

소스와 토핑처럼 믹스했을 테니까


결국 이 메뉴인지 메뉴판인지

레시피인지를 제가 만들었다면

예전의 식감이 아니라고 느껴졌을 때

테이블과 접시, 커튼과 조명이

바뀌어서 그런가...로

핑계 댈 수 없다는 거예요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같은 위로와

태어나 그런 말 처음 들어요 같은 반응이

유행이긴 하지만 이건 제 탓이 맞아요


확신이 없는 건 아닌데

목적지가 흐리게 보여요

우리의 항로는 왜 이렇게 안개가 잦은가요

이렇게 가는 게 맞는지 자주 자문해요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어요

가고는 있는지 속도까지 합의한 건 아닌데

혼자 쓰지도 않은 계약서를 뒤적거리는지


망상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지

부디 아름답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지

한없는 배려를 산소호흡기처럼 차고

헉헉거리며 무례를 이산화탄소처럼 내뱉는 건지


새로운 점선면과 픽셀로 그린

혼자 만의 집에서 혼자 개발한 1인용 게임을 하며

게임 캐릭터를 사랑하고 있는 건지

게임칩을 머릿속에 심고 너무 몰입해서

칩이 녹아 뇌의 일부가 되었는지

스스로의 판단력을 그리 의심한 적은 없는데

요즘 몇 주는 다른 몸에 사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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