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소설. 구의 증명
식인에 대한 반복 묘사는
실패한 집착에 대한 확인사살
뼈까지 다 씹어먹어도
구는 되살아나지 않고
아무리 회상을 이어 붙여도
담은 구에게 돌아갈 수 없어요
노아도
이모도
아무도
돌아오지 않고
기억을 잠식하던 사람들이 떠나면
정신은 영영 복구될 리 없습니다
남은 자는 잃은 자이고
남은 자는 불구이며
남은 자는 자신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서서히 사라지며 고통받는 자
담은 눈물 대신 구의 피를 마시고
육개장 대신 구의 살을 뜯었어요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
아무리 떠올려도 돌아오지 않는 실체
구의 회상이
담의 상상인지
귀신의 독백인지 모르지만
구는 담이 되겠죠
혀와 식도를 거쳐
위와 장을 지나
살과 피의 일부가 되겠죠
담이 여전히 살아있다면
구와 하나가 되었다는 걸
숨 쉬는 내내 실감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웃고 떠들 거예요
혼잣말처럼 보이는
둘 만의 커뮤니케이션
도저히 묻을 수가 없어
자신의 입에 넣는 장례를
정확히 지칭하는 단어는 드물겠지만
담은 그렇게라도
구를 직접 없애야 했어요
사과이자 의무, 권리이자
상주의 도리라고 여기며
그렇게라도 담은 구를 만지는
마지막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구를 기다리는 시간이
담이 끌어안은 시체가 되었을 때
담은 안도하며 구를
뇌에서 꺼낼 수 있었고
구의 영원한 무덤이 되어
이승부터 저승까지 함께
떠돌 수 있겠죠
(발췌한 문장들을 다시 읽어 보니)
담은 구를 살리려고
담 안에 담아 구를 살려내려고
담이 살아야 담 안에 구도 산다는 믿음으로
구를 씻기고 구를 씹어 삼키며
담은 그렇게 구를 살리기 위해
최후의 방법을 쓴 것처럼 보여요
구는 회상을 통해 낱낱이 토로했지만
담은 결코 다 알 수 없는
구의 삶, 태어났다는 죄
이렇게 서로를 다 몰라도
이렇게 서로를 삼킬 듯 엉켜서
결국엔 한쪽을 완전히 먹어치우고
기어이 하나의 신체가 되었죠
다시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그림자
사연 없는 인간은 없다지만
어떤 사연은 인간을 인간으로 살게 두지 않아서
실패한 부모와 억겁의 가난과
극악의 폭력 안에 가두고 죽을 때까지 팬 후
구처럼 버린 후 담에게 던져둡니다
어쩌면 담은 죽으려고
구를 먹지 않았나 싶어요
구가 있을 것 같은 미지의 어둠으로 가려고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구를 먹으면
담은 구가 길을 잃은 곳으로 가게 되어
같이 길을 잃으면 될 테니까
거기나 여기나 어차피
이성과 상식이 작동하지 않는 곳일 테니
서로의 눈코입손발털이 되어
하나의 몸을 부여잡고 나아가면 되겠죠
덜 외롭겠죠. 여기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