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없어요
깨달음 같은 거에 의지할 시간이 없어요
모든 통증은 실제 사고에서 비롯되었고
무슨 이야기를 더 꺼낸 들
지금까지 한 이야기의 교집합
그래도 급사할 수는 없으니
뭐라도 잡을 단어를 더듬거려 보면
최근 도착한 단어는 용서
용서는 아직 새로워요
용서의 자격이든 조건이든
상황이든 대상이든 주체든 뭐든
용서는 낯설어서 조금은
진통제 같은 기대를 지니고 있어요
언제든 익숙해지겠지만
지루해지거나 효용 가치가 떨어지면
그땐 대안을 찾으면 되겠죠
'용서'가 다시 들리기 시작한 건
유포리아 스페셜 파트1을 보면서
당장 모두를 죽이거나
이후 나도 죽을 수 있는 이유가 넘치는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서
먼저 암흑에 살고 있던 자는
지금 암흑에 살게 된 자에게
용서라는 개념을 제시해요
마치 이것이 작금의 무간지옥을
그나마 온전히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이것이 공익적이라서
이것이 나를 위해서라서
이런 해결과 위안의 방식이라서가 아니었어요
이것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마저 정확하거나 확실하지도 않은
이마저도 하지 않으면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방도가 없으니까
실제 세부 내용과 다를 수 있으니
제가 받은 인상은 그랬어요
우린 누구도 구원해 줄 수 없지만
가끔은 자기가 갔던 지옥을 피하는 법 정도는
마음이 가는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는데
그게 용서라고
원점으로 되돌릴 순 없겠지만
그나마 출혈과 전염을 막고
악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을 잠시라도
저지하는 방식이 아닐까 하고
나는 누굴 용서할 수 있나요
좁고 낮은 그릇에 무얼 담나
총알 세기에도 손가락이 모자란데
많은 것들이 더 지겨워지고 있어요
원하는 데로 되지 않아서 일텐데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극단적인 방법을 고민하거나
일부는 실행에 옮기나 봅니다
지겨움과 죽음 사이는 너무 멀어 보여도
어떤 지겨움이냐에 따라 다르기도 해요
증오가 지겨워서 용서를 선택하고 싶어요
죽음에 대한 가설도 너무 지겨워져서
최신 업데이트된 대안이 용서라고
이런 글에서 언제쯤 멀어질까
호흡기가 비좁아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