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도망가는 것처럼 보였다.
출근길.
매일 보는 감은 눈과 뒷모습들이었는데,
오늘따라 더 깊이 잠들어 보였고
오늘따라 더 빠르게 시야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어느새 눈앞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 작은 점들의 움직임뿐.
거리 위에서 그림자는 나 하나였다.
죄를 지러 가는 건 아닐까.
가난을 피하기 위해
상대를 해하고
자신을 죽여가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어째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착하다는 개념이 생겨났을까
누가 이런 걸 생각해냈을까.
옳지 않고 착하지 않은 것들을
틀리고 나쁜 것으로 만들어 놓았을까.
애초 정해놓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은 더 아무렇지도 않게
인공이 닿지 않은
야만의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지 않았을까.
돈을 버는 게 옳다
일을 하는 게 옳다
인사를 하는 게 옳다
이미 정해 놓은 일들을
조용히 따르는 게 좋다
지금껏 따르지 않고 의문을 가졌던 이들은
모두 죽거나 다치거나 사라졌기 때문에
현존하는 질서에 대한 의문은 늘
겁박의 경계에 이를 때 수그러든다.
지키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조상들은 그렇게 정해놓았단다.
그래서 나와 우리는
열차에 오를 때마다
문을 나설 때마다
거대한 빌딩에 들어설 때마다
무명인들 사이에 섞여
무명의 증오를 나눌 때마다
피어오르는 의문을 묻어두고
살기 위해 입을 다물고 있다.
그렇게 지켜보고 있다.
먼저 어기는 사람들과
먼저 외치는 사람들과
먼저 떠나는 사람들과
먼저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들과
먼저 피를 흘리는 사람들과
먼저 이게 틀렸다는 사람들을
지켜만 보고 있다.
지켜만 보고 있는 자신을
지켜만 보고 있다.
무력한 건 편하고 좋은 거라며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게 좋은 거라며
배운 걸 잊고 분노는 폐기하며
'옳고 착한' 사람이 되어 간다.
그렇게 아무도 피해 주지 않고
그렇게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며
그렇게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 자신을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고 합리화한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죄인으로 만든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틀렸다고 말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을 바보라고 말하며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지만
자신과 다른 선택을 했기에 자초한 불행이라고 혀를 찬다.
그렇게 도망친다
그렇게 뒷모습만 바라보며
느린 걸음으로 무리에서 벗어난다.
입을 다문다.
주위에서
눈과 몸에 거슬리는 모두가
떠나갈 때까지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는데
눈 앞에 사라진 사람들과
눈 앞에 펼쳐진 깨끗한 거리를 보며
봄이 오고 있다고 착각한다.
이래서 겨울은 늘 같은 색이었다며.
이 또한 지나가면 괜찮을 거라고
혼잣말을 써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