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은, 박지현 주연. 은중과 상연
나는 너를 좋아할 수밖에 없어
필요 없어요, 잘해 주는 거
마음을 감출 수 없다는 걸
좋아했어요
나 혼자 좋아한 거야
태초부터 거대한 오해가 있어서
그 오해가 겹치고 엉키고 섞여서
스치고 인사하고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아니 이건 오해가 아니야
우주 대폭발이 일어나고
원숭이가 사람이 되고
바다가 빌딩숲이 되다가
1명이 70억 명이 되다가
두 명이 세 명이 네 명이 아니
우리가 입술을 열어 소리를 내뱉고
입김이 섞이며 의미를 알아듣고
공기의 온기에 반응하고
옆에 나란히 앉아 시간을 보내고
기다리고 기다리지 않아도 기다리고
혼자 너를 생각하고 너가 무엇을 하든
혼자 너를 생각하고 너가 무엇을 하든
혼자 너를 생각하다 새벽에 울고 웃고
너가 어디로 자주 다니는지 동선을 파악하고
너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계속 궁금해하고
너와 같이 가고 싶은 곳을 떠올리고 떠올리고
전하지도 못할 말을 적고 지우고 구기고 다시 적고
타이밍을 놓치고 침묵이 반복되고 어색해지고
내 잘못이 아닌데 너가 나를 그렇게 볼까 봐
심장을 지키는 모든 갈비뼈가 으스러지도록 두들기고
실체도 모르면서 상처를 줬을까 봐 무조건 사과하고
그런 내가 아무렇지도 않고 무조건 너를 향하고
내가 너를 대하듯 너는 나를 그렇게 대하지 않는데도
그저 너가 나를 거절하거나 거부하거나 떼어놓거나
하지 않기만을 바라며 곁을 맴돌고 혼자 웅얼거리고
제대로 표현도 못하고 그저 모든 판단의 기준을
너로 정하고 그게 중력이 되고 우주의 질서가 되고
살아있는 이유가 되고 나의 세계가 작아지든 말든
아니 소멸되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고 너를 섬기고
자책하고 넘어지고 혼자 아파하고 그러다 이게 모두
나의 착각은 아닐까 한탄하고 그럼에도 멈추지 못하고
너가 작은 반응을 보이면 그거 하나에 잠을 못 이루고
맑은 밤 별의 개수만큼 의미를 부여하고
혼자 걸으며 웃고 물리적으로 멀어지고
편집되지 않는 현실을 감내하고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는
나의 어느 것 하나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좋아하는 시간 내내 겪었으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들키지 않으려 하고
스스로에게 조차 거짓말을 하고
이건 거짓말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이게 뭐 하는 짓이니 하면서도 멈추지 못하고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는 너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되고 무서운 생각을 하게 되고
죽거나 다치거나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이유로
어떻게 되었을까 봐 발을 동동 구르고
알아낼 방법을 수소문하고 괜찮을 거야
모든 긍정적 사고를 총동원하고 아무 소용없고
반복되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무너지고 마모되고 닿아 없어지고 나의 원본은
없어지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지고
너가 없는 상황에서 너를 내내 떠올리니 이러다
어떤 마지막이 와도 공존하고 있구나라는
결론에 이르고 이건 공존이 아닌데
종속과 폭정, 포식과 장악,
압도와 섬멸, 세뇌와 고문인데
이게 오해라면
존재 자체가 오류인데
나는 너를 좋아할 수밖에 없어
나 혼자 좋아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