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은, 박지현 주연. 은중과 상연
너만큼 나 자신을 혐오스럽게 만든 사람은 없었어
네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너무 짜증 나더라
그게 나야 넌 이해 못 하겠지만
난 걔를 한 번도 이겨본 적 없어요
가지 마
난 아무도 없어
네가 뭐가 불쌍해
저 나쁜 년인데 한 번만 안아주세요
네가 멀쩡한 게 싫어
이건 네가 생각하는 나일뿐이잖아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는 게 아니라
아이가 한번 그렇게 생각을 하면
세상이 그렇게 돼버리는 거야
난 고통의 끝까지 봤어
너도 내가 보고 싶을까
상연(박지현)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누군지 인지하고
사랑이 필요하거나
사랑을 갈구하게 되는 시기가 되었을 때
(흔히 어린 시절이라고 하는)
그 시작의 시즌에
아무도 아무도 아무도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아서
아무도 사랑이라 여겨지는 걸 주지 않아서
누구에게도 그런 걸 받지 못해서 결국
스스로 어떻게 아끼고 사랑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게 된 사람은
사는 내내 남과 다른 선택을 하며
자신이 고통받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후천적으로 얻은 지식과 정보로
머리로는 타인의 선한 행동과 의도를
인지할 수 있겠지만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자신을 향한 관심과 애정을 납득하지 못한다고
해석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나는 사랑받지 못해
나는 사랑받을 자격 없어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누구도 내게 사랑을 주지 못해
나는 사랑받을 수 없어
과거 현재 미래 전부 다
그리고 너희들이 내게 보여주는
이건 사랑이 아냐 절대 아냐
나는 사랑받지 못했고
나는 사랑받을 자격 없으니까
그토록 원했는데 갖지 못한 걸
가까운 타인이 가졌을 때
더 탐닉하게 되어서
죽여서라도 빼앗고 싶었고
그 표적이 유일한 친구가 되었고
그가 눈물겹게 사랑한 사람을 빼앗고
그가 평생을 바쳐 사랑한 직업을 빼앗으며
상연이 은중(김고은)을 죽이려 들 때
상연의 느린 자살은 이미 진행 중이었다고
전조도 없이 가족이 죽고 가해자가 되고
경제력이 사라져 급격히 작아진 집에서
노동과 학업을 병행하고
아무도 완전히 무너진 세계를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자기에게 설명해주지 않았고
가져본 적도 없다고 여겼던
행복의 조건들을 완전히 잃어버렸을 때
없어지고 잃은 자의 처참한 설움을
온몸으로 감내해야 했을 때
불 꺼진 방에서 지친 몸과 퀭한 눈으로
홀로 흐느껴야 했을 때 절망의 높이와
추락의 깊이를 가늠조차 할 수 없었을 때
다 잃은 상황에서 더 잃어야 했을 때
피를 나눈 자들이 죽은 산과 바다
모두 금기의 영역이 되었을 때
끝내 빼앗은 것들로 쌓은 바벨탑에서
쾌락에 취하다 단숨에 망가졌을 때
상연은 학습된 것들을 떠올리며 더 이상
이 지긋지긋한 고통과 마주하지 않기로 한다
자살, 시한부, 조력사로 이어지는
온통 죽어가기만 했던 삶
이런 사람에게
나도 네 맘 알아, 나도 너 이해해
이런 대화는 얼마나 하찮고 가볍고
우습고 한가하게 들릴까
당사자도 평생을 무너져가며 알아내고
이해하려고 해도 실패한 내 삶을
눈앞의 타인이 이해할 수 있다니
저렇게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솟을까
저 역시 사랑받은 사람들만의 객기인가
상연의 모든 선택이 최선이라 여기지 않는다
상연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지위가 되었을 때
이미 상연은 스스로 선택하는 방식을 모조리
잘못 알고 있었다. 그게 틀렸다고 모두가 말해도
상연에겐 들리지 않았다. 상연의 눈빛은 이미
모두와 다른 세상을 보고 있었다
다른 세계에서 내내 살아야 했고 그 세계는
벗어날 수 없었으므로.
이런 상연에게 은중은 동경과 질투의 대상이었고
은중으로 살 수 없는 자신을 저주하며
은중의 삶을 최선을 다해 파괴했다
한순간도 미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은중은 상연 자신이었고 상연은 자신에게
미안하지 않았으니까 미안할 줄 몰랐으니까
다만 호기심이 있었을 것이다
저런 삶은 어떤 삶일까
사랑받는 삶은 어떤 삶일까
좋을까 귀찮을까 따뜻할까 부드러울까
호기심이 생길 때마다 갖지 못할 거
죽이는 게 낫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게 상연만의 자살 방식이었으니
어떤 고통은 생명을 대가로 치르더라도
끝을 염원하게 된다. 망설임 없이
이따위 삶 두 번 다시 태어나지 않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