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O 더 피트
우린 왜 이런 전공을 선택한 걸까요?
ADHD 환자라서 다른 전공은 완전 따분하거든
이 병원에서 얼마나 일하셨죠?
32년요
내가 오늘 치료한 환자 수는 몰라도
죽은 환자들은 정확하게 기억해
3시간 동안 112명의 환자
못 버티겠어요
이건 사람을 망가뜨릴 수 있는 직업이야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이들이
삶을 전쟁에 농담처럼 비유할 때
전쟁을 겪어본 이들의 반응은 그저
쓴웃음만으로 끝나지 않을지 모른다.
전쟁에 대한 가벼운 언급이 거기서
살아남은 자신까지 가볍게 여기고 심하면
모독하는 태도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진짜 고통은 증언이 없다.
경험자는 그때 그곳에서 죽었으니까.
응급실은 어떤가.
전쟁터에 비견될 수 있나.
피와 살점이 튀는가 그렇다
총상이 드러나는가 그렇다
뼈가 파괴되는가 그렇다
정신이 분열되는가 그렇다
압박이 쉼 없이 몰아치는가 그렇다
몰아치고 몰아치고 또 몰아치는가 그렇다
죽어가는 자 옆에 죽어가는 자가 있는가 그렇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누군가는 죽는가 그렇다
눈과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가 그렇다
여성들이 극도의 폭력에 둘러싸여 있는가 그렇다
목숨 건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많은가 그렇다
아무리 신에게 빌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가 그렇다
같은 편에게 의지할 수 있는가 그렇다
끝나면 허탈한가 그렇다
죄책감을 견딜 수 없는가 그렇다
지쳐 쓰러질 것 같아도
최악의 상황이 계속되는가 그렇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적이 될 때가 있는가 그렇다
끔찍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가 그렇다
낮에도 밤에도 시체가 쌓이는가 그렇다
비명과 울부짖음이 계속되는가 그렇다
이런 경험 속에서 은유와 비유는
누울 곳이 없다. 대기조차 할 수 없다.
일곱 시간 기다리다
다시 순서가 밀리기도 하니까.
선착순이 아니라 얼마나
상태가 심각한가의 기준.
모두가 자길 먼저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다.
환자는 의사와 간호사에게 울부짖고
의사와 간호사는 울부짖을 겨를이 없다.
당장 죽고 싶어도
처음 보는 피투성이 환자의 몸을
메스로 가르고 바늘로 꿰매어 살리고
당장 도망치고 싶어도
옆에서 무너진 동료를 먼저 일으켜 세운다.
안구 뒤에 고인 피를 짜내고
총알이 심장을 관통한 자의 흉부를 누르며
여성들 이름을 적어 처형리스트를
만든 자를 경계하고 감시하고
과거의 죽은 자들이 내내 심연을 옥죄고
어린 언니는 더 어린 동생을 구하다 죽고
약물과 마약 중독으로 실려온 자들을 살려내고
죽을 때 죽더라도 하나라도 더 살리고
죽어야 한다. 그런 삶을 선택했다.
죽어가는 자들에게 죽지 말라고 하며
죽어가는 자신의 죽음을 방치하고
고통받는 자들을 한없이 이해하려 시도하지만
정작 자신의 고통에는 관대하지 못하고
추락하는 이들을 온몸을 던져 구해내지만
자신의 추락은 막지 못하는 자들이
이곳에 모여 흰옷을 입고 핏물 속에서
다 같이 허우적거리며 살아있는 모든 것과 싸우고
죽어가는 모든 것을 붙잡고 이미 죽은 모든 것에
괴로워하며 후회와 눈물과 공포 속에서
이런 선택을 끊임없이 한탄하며
퇴근도 안 하고 있다.
행복과 희망은
절개와 삽관보다 상위에 이르지 못한다.
아나필락시스 Anaphylactic shock를
알아들을 만한 과거를 떠올리다 보면
HBO 더 피트는 편집된 드라마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예외는 없다. 모두가 언젠간 저곳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