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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의 여파

by 백승권

i

어떤 감정의 선택은

광기가 전제되어 있어

하지만 이보다 더

또렷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알아

모를 수가 없어요

예외도 있겠지 하지만 없어

있다고? 난 대화하는 게 아닌데


(intermission)


썼다 지움 (이유: 너무 반복된 표현)


(pause)


ii

살다가 어떤 충격을 경험하면

그 충격의 여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면

충격이 아니라 타고난 자연상태처럼 인식하게 되고

그 충격이 다시 오기를 기다려


고전적인 외로움

클래식이 최초의 음악은 아니었겠지만

어떤 감정은 자주 듣는 곡과 닮았고


환청과 잔상들

맑아도 밝아도

겹치는 추위


잊어도 되는 거였나

무감각해지는 게 가장 두려웠는데

두려운 건 두려움 자체였어요

무감각해지면 무감각을 인지할 수 없죠

죽으면 죽음에 쫓기지 않듯이


혼자 남아 깨닫기만 하는 삶은

고통 고문 고행 고립 고초 고단


(intermission)


iii

세상이 너무 빨리 어두워진다

가끔 어떤 표정과 말투를 연습해요

섣부른 자기만족은 독인데

이젠 그걸 따지는 것도 임계점에 도달해서

판단의 가치조차 제대로 분간하기 쉽지 않아


분절된 생각과

어지러운 감각

정리되기 전에 메모하는 습관과

가시적인 부작용들


오래전 본 독일 영화에서

주인공이 거대한 비극적 사건을 겪다가

생리 주기가 돌아온 걸 보고

자신이 괜찮아졌다는 게 어이없어서

망설였던 테러를 순식간에 실행으로 옮겨요


언젠가부터

뭔가를 열심히 먹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나서

저 영화 주인공이 느꼈을 당황스러움과

죄책감, 결단과 실행을 차례차례

떠올리곤 합니다


세상을 멸망시킬 순 없지만

나 하나쯤은 망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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