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슬프면 슬프다고 쓰고
힘들면 힘들다고 쓰고
아프면 아프다고 쓰고
숨차면 숨차다고 쓰고
죽고 싶으면 죽고 싶다고 (쓰고)
죽이고 싶으면 죽었으면 좋겠다고 (쓰고)
(자주 사용한 감정 상태의 나열이 귀찮음)
복사기처럼
거울처럼
수면처럼
그대로 쓰고 있어
수달
수년 아니
수십 년?
판단을 보류하니까
제동장치가 없어
그냥 쓰고 잘 지우지도 않고
수정은커녕 말을 붙이고
숨을 붙이고 눈물을 오려 붙이고
잠을 줄여 붙이고 너무 길거나
또는 주제가 없고 주제도 모르고
이상한 덧글들이 나부끼고
고맙습니다 인사하면 모두가
싱가포르에서 왔다고 하고
싱가포르는 뭐 하는 곳일까
기계를 흉내 내는 연기 연습을 하다
인공지능이 선수 쳐서 배역을 빼앗긴 것 같고
친구는 이상한 어른들과 결혼을 하고
친구는 오래전 결혼 전날을 이야기하고
친구는 모두에게 알린 후 결혼하고
친구는 아무도 모르게 결혼을 지우고
친구는 친구이거나 친구가 아니고
사람 이름은 아니지만 친구는 아니고
파워포인트 파일을 삼킨 후 쏟아낸
인공지능의 문장을 고치다가
질문을 잊어버린 채 하염없이
멈춤 없이 대답을 이어가는 (오래 전)
인터뷰룸의 나와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고
말이 안 되는데 계속 말하며 말인 척하는
아무 말 없이 하루 종일 그림자가 되어 글을 쓰고
커피를 마시고 립밤을 바르고 비타민을 먹고
글을 쓰고 글을 쓰고 누가 읽을지 모를 글을 쓰고
자유의 전제가 미량의 구속이라면
이런 게 어쩌면 지속 가능한 감금 상태의
글쓰기일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replay)
ii
곽진언이 부른 김동률의 곡을 듣는다
어떤 이별이 되었든
상대는 영영
듣지 못할 고백
알지 못할 감정
혼자 있을 때만 등장하는 토로이자
닿을 수 없는 깊이에 있는 흐느낌
김동률의 서정적인 곡들은 대부분
과거에 적을 두고 있다
애초 현재의 중력으로부터 멀리
뒷걸음치며 물러나와 자신에게 보내는 위로
말하지 못한 자에게는 아련하고
듣지 못한 자에게는 안타깝지만
그림자가 두 개일 때는
공명할 수 없는 겨울의 언어
자신에게서 자신을 떼어놓기 위한
처연한 작업의 일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