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심연의 눈

by 백승권

이게... 참

설명하기 어려운데


스스로를 아무리

깊이 오래

들여다봐도 도저히

모르겠을 때가 있어


시력을 잃은 게 아니라

안구 자체가 없는 느낌이야


그걸 제대로 보려면

다른 눈이 필요한 건 아닐까 여겨질 정도로

아니면 봐서는 안 되는 걸 자꾸

보려고 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보이지 않아


그런데 왜 보려고 할까

거기에 내가 있으니까


어떤 내가, 나의 일부가, 아니면

전부보다 큰 어떤 것이

거기에 있는 것 같아서 자꾸

보려고 하게 돼

설명하기 어려우니

이미지가 잘 그려지지 않는 게 당연해


(pause)


아니

거기 있는 건 내가 아냐

나라고 하면 너무 의미가 작아져

내가 보는 주체라서 보이는 대상조차

나로 귀속시키거나 내 프레임 안으로 한정시켜

정의하려 드는 것 같아, 내가 아냐

나일 수 없어, 내가 본다고 나와 모두

연결되거나 나의 일부 따위가 될 수는 없지

보이지 않는 그곳에 있는 것은 내가 아냐

절대 그럴 수 없어 그렇게 작거나 보잘것없지 않아

느껴진다고 나와 닮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


그럼 뭘까 뭐여야 할까

있기는 할까 그림자도 없고

중력도 작용하지 않으며 움직임도 없고

보이지 않지만 어둠이라 칭하기도 힘들고

들리지도 만져지지도 않고

위치와 방향은 맞을까, 나 혼자 무슨

다차원적인 착시 착각 망실 상태에 빠진 건 아닐까

거기 있기를 바라고 있어서 거기 있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너무 강해져서 무형의 존재감을

창조한 건 아닐까,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고 있다고 겨우 믿어가며 실제

이걸 누적시켜서 기어이 실체화하려는 건 아닐까

추상의 레이어를 겹겹이 쌓아놓고

측정 가능한 부피감을 만들려는 게 아닐까

무형으로 유형을 만들고

어둠으로 빛을 만들어서

어쩌다는 것일까 정녕 이러고 있는 걸까


약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어쩌면 약도 소용없는 시간이 오거나

이미 왔을까 봐 기분이 이상해

정신이 아니 모든 게 이상해졌어

영원히 회복될 수 없는 뭔가를 잃었고

결핍이 비로소 자연스러워지는 상태가 되었고

그래서 기이하게 느껴져

신경이 일부 소실된 듯한

감각의 일부를 영구적으로 포기한 듯한


점점 그렇게 여겨져

분명 뭔가가 있는데

그 뭔가가 이렇게 만들고 있어

내가 심연을 보고 있는 게 아니었어

나는 심연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

처음부터 심연이 나를 보고 있었어

심연의 눈앞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덩그러니 피사체가 되어

보이지 않는 듯 보여지고 있었지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