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미키 17
복제인간이
독재자 살상용으로 쓰인다면
조금 더 동의할 의향이 있다
죽음의 두려움에 떨면서도
결의를 감행했던 18(로버트 패틴슨)처럼
가장 우둔하고 느리며 낮은 자의
정반대 편에 있던 날카로운 반쪽은
신세계의 커뮤니케이션을 다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가장 거대한 방해물을 제거함으로써
절대다수의 생존에 기여한다
17(로버트 패틴슨)은 생명체 같지 않다
약한 감각과 감정의 상징과 같을 뿐
육체적 본성을 지니고 어리석은 행동을 전시하며
이용당하고 호기롭지만 타인의 도움 없이는
살아남지 못한다. 오히려 계속 죽고 죽고 죽으며
무지의 대가를 치르고 치르고 치른다
17을 동정할 순 있지만 누구도
17처럼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몸을 생체 실험체로 써가며
조롱과 무시를 자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건 숭고한 희생이 아니라
모두가 외면하는 생명 경시와
도구화의 극단일 뿐이다
이런 역할이 있어야 남은 인류가 존속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는 있어도 그 역할을 누구도
시한부 인생이라도 자처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17이 이 역할을 맡게 된 건 망한 사업으로
사채업자에게 죽음의 위협을 당하며 쫓기고 있었고
신체 포기에 가까운 계약서도 읽지 않고
사인했기 때문이다
그가 어찌어찌하다가 인류를 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맡게 되었다고 하여
그의 궁핍한 시작과 처참한 과정이
찬양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심지어 17과 나샤(나오미 애키)와의 로맨스조차
폐쇄적 상황에서의 작위적인 선택처럼 보였다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논리와 이성의 영역을
뛰어넘긴 하지만, 그저 별다른 동기 없이 갑자기
둘이 눈이 맞았다 정도로 점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연약한 백인 남성을 사랑하는 강한 흑인 여성
연약한 백인 남성을 배신하는 영악한 아시아 남성
연약한 백인 남성을 복제한 의연한 백인 남성
나머지 뒤섞인 성별과 인종과
역할들끼리의 혼돈 속에서
신세계의 외계인을 공격하려는 구세계의 외계인
성별의 차이과 인종의 차이도 결국
서로 외계인으로 인지할 수 있다
같은 행성의 외계인들끼리도 합의가 안된 상황에서
다른 행성의 외계 괴물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할리 없다
어리석은 권력과 이를 비호하는 기생충들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는 폭압과 동조자들
신세계의 징그럽고 낯선 외형의 괴물들은
마냥 선량한 존재들이 아니다
생존을 위해 설득하고 타협해야 할 집주인에 가깝다
하지만 독재자는 이들에게 부탁하러 온 게 아니다
그의 탐욕과 아둔함 때문에
원주민과 침입자의 거리는 멀어지고 있었다
인류의 리더가 사라져야
인류의 진정한 독립이 가능해 보였다
죽음의 극단적 두려움을 넘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을 때
인류를 진정으로 구한 것은
천재의 놀라운 전략이 아닌
가장 낮은 지위를 지닌 자의
가장 높은 수준의 희생
그래서 미키와 나샤의 사랑은?
어느덧 상대의 극심한 고통을 나누려는
대담하고 사려 깊은 레벨에 까지 이르고
심지어 연인의 복제인간에게 까지 애정을 느끼게 된다
나샤가 17과 18에게 느끼는 이유는 애초
인간적 본능보다는 복제품 같은 외모를 지닌
존재들에 대한 경이로운 신기함에 가까웠다.
인류는 살아남을 것인가
노동자를 복제하하는 첨단 기술의 도움이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살아남은 후
가장 먼저 노동자와 노동자의 복제 인간이
말살의 대상이 될 것이다
소수의 희생이 다수의 어두운 과거가 되는 순간
권력자들은 집단 망각을 유도하고
새로운 세뇌 절차로 돌입할 것이다
미키 1177이 있더라도 결국 제물이 될 것이다
나의 넘버는 무엇일까
앞으로 몇 번의 죽음이 남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