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수거함(종이)을 비우다가

by Glenn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눈물 나요

생각나서


능력은 없지만

너를 걱정해요


어두운 시절에 만나

너를 사랑했어요


시린 추위에

괴롭지 않길


그리고 당신은

이 편지를 읽을 수 없습니다

보내지 않을 테니까


......


지옥의 담벼락이 무너진 듯

쌓여 있는 쿠팡 박스 더미 사이로

팔랑 나부끼며 아무 데나 누워 있는

누가 쓴 편지를 읽는다


성별을 알 수 없음

A4에 프린트된 바탕체라서


유서인가


술 마시고 썼을까

줄담배 피우다가?

새벽에 깨서 갑자기?

카톡 메시지를 연습했나

직접 말로 하려나

정말 안 보냈을까

혹시 받는 사람이 다른 곳에 있나


모르겠다

손가락 먼지를 툭툭 털고

카트를 밀고 오던 길로

돌아갔어


며칠 전 주말에


......

라는 드라마

라는 에피소드

라는 꿈


누가 누굴 속이고

아무도 믿지 않는지

그런 일이 있었는지


아득하고 정말

없었던 일 같다


이렇게 길고 느리며 육중한 평일은

너무 오랜만이다

태양의 일부를 훼손해서라도

시간을 서둘러 당기고 싶고


기억과 환상 사이에서


지금 내가 편지지라면

너무 많이 구겨져서

무슨 말인지 읽지도 못해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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