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스마트하지 않은 행동

SUPER SMART MOMENT

by 백승권

SUPER SMART MOMENT

- 전화기를 끄자. TV를 끄자. 약속을 끄자. 홀로 책을 펴는 순간, 진정한 스마트가 시작된다.


지금부터 가장 스마트하지 않은 행동을 제안할 생각이다.

강요가 아니다. 그저 인류가 눈코 입을 달고 나온 태초에서부터 시작된 아주 오래된 역사를 지닌 행동이자, 세계가 완전히 소멸할 때까지 그 생명력이 시들지 않을 행동 중 하나일 뿐이다. 이미 지난 과거를 훔쳐보는 관음증이기도 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위한 동력을 얻어가는 정신적, 정서적 생산활동이기도 하다. 다 꺼져버렸으면 좋을 것 같은 군중의 틈에서 오롯이 혼자인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완벽한 위로이기도 하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날에 내 이야기를 대신 조잘대어주는 친구이기도 하다. 책과 인간의 사이는 이토록 지난한 관계를, 그 엄격한 간극과 뜨거운 체온을 아주 오래도록 유지하고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누구도 자신의 인생에 ‘필요한’ 책을 모두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시간도 없고 책을 읽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다만 느슨한 우연에 기대어 풍족해지는 삶을 원하지 않는다면, 최소한의 적극성으로 지금부터 소개하는 책들에 다가갈 필요가 있다. 이 책들을 덮은 후, 나는 변해 있었다.

모두에게 주어진 똑같은 삶을 지성과 고뇌로 가득 채운 광기의 기록


다시 태어나다/수전 손택

문학은 자유다, 타인의 고통, 해석에 반대한다 등, 평론가, 저술가로서의 수전 손택은 몇 권의 책을 통해 조금 알고 있었다. 저자와 문화적, 시대적 배경에서 오는 차이로 인해 평론의 대상이 된 연극이나 영화를 접하지 않았을 경우, 이해의 벽과 부딪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 반대로 911 테러나, 전쟁을 다루는 언론의 방식 등 여전히 첨예하게 다뤄지는 주제들에 대한 글들을 읽을 때면 소스라칠 정도로 거대한 지성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건 무지의 영역을 그저 대단하다고 치부하는 것이 아닌, 같은 사건을 보는 관점과 태도, 또 이를 글로 풀어내는 능력에 대한 생경함과 놀라움이었다. 글을 쓰는 이로서 수전 손택은 그렇게 경외의 반열에 올랐다. 업과 사회적 지위에서 벗어난 그녀가 궁금하지 않았다. 평생 우정과 사랑을 공유한 동성 연인에 대한 이야기는 간혹 들었지만 이게 그녀의 글에 대한 태도를 바꿔놓진 않았다. '다시 태어나다'는 계획된 책이 아니었다. 수전 손택이 썼지만 다수를 대상으로 한 글이 아니었고 생전 책으로 묶을 계획도 예정에 없었다. 사후 아들에 의해 수집되었고, 아주 긴 시간 동안 기록된 그녀의 개인감정과 사건을 모아놓은 '일기장'이었다. 10대 20대 30대까지 소녀에서부터 결혼한 여자와 엄마가 되기까지 역할에 맞춰 살아온 한 인간이 아닌 온전히 수전 손택으로서 느껴온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었다. 자신이 유일한 필자이자 독자였기에, 온통 날 것의 표현들로 가득하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현란하고 지적이며 거침없는 지성의 편린들, 자라서 수전 손택으로 가꿔진 것이 아닌 애초 그녀는 어릴 적부터 수전 손택이었다.

모든 숨겨진 기록이 드러낼 가치를 획득하는 건 아니다. 물론 이 남자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헬렌 야페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티셔츠로 상징되는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 지금 세대에 알려진 그의 이미지는 타협과 굴복을 모르는 영원한 젊음이다. 영화배우 같은 (표현력이 강한 직업군에 속한) 이미지로서의 우상화가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선택한 의지와 행동을 통해 다수와 국가의 운명을 바꿔놓은 체 게바라는 혁명가의 위상을 -국가 반역의 우두머리가 아닌 시대를 뛰어넘는 선망의 대상으로- 바꾸어 놓았다. 단단해 보이는 체구, 크고 짙고 깊은 눈, 코와 턱 주변을 덮는 수염, 빛이 드리워졌을 때 윤곽이 도드라지는 굵은 얼굴선, 할리 데이비슨이 어울릴 법한 마초적인 외모를 지녔지만, 이러한 외모적 강렬함에 가리어진 그의 다른 쪽 면은 수많은 기록을 남기고 해박한 지식으로 국민과 국가의 변혁을 이끌었던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은 굽히지 않는 패기와 무력투쟁으로 대표되는 혁명가 체 게바라의 숨겨진 면모를, 영국의 경제사학 박사 헬렌 야페가 방대한 자료와 정보, 증언, 기록 등을 모아 옮긴 책이다. 사회주의 국가로서 쿠바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 그가 노동자의 태도 분석과, 경제학, 심리학의 적용을 통해 쿠바 산업을 이끌었던 수년을 고스란히 담았다.

만약 쿠바의 기반을 닦아놓은 후 체 게바라가 조금이라도 흑심을 품었다면 아주 쉽게 독재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 테다. 그는 주변은 물론, 국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원한 건 관료가 아니라 혁명가였고 실제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저항과 혁명의 현장으로 다시 뛰어들어 볼리비아 정글에서 죽음을 맞는다. 시대를 관통하는 수많은 위인들이 그렇듯, 체 게바라 역시 쿠바의 열악한 상황이 만든 하나의 신화화된 인간일지도 모른다. 하나 특수한 상황에 처했더라도 방향을 결정하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고, 보다 쉽고 편한 길을 택하려는 건 보편적인 인간의 본성이다. 그는 의사가 되었을 수도, 자본주의를 받아들였을 수도, 미국의 비호 아래 독재자가 되었을 수도, 쿠바에 머무르며 편안한 노후를 보냈을 수도 있었다. 그것은 개인 ‘체 게바라’를 위한 선택이고 그때까지의 그의 업적으로 미루어 짐작하건 데 이러한 선택을 비난할 자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마치 프로그래밍이라도 된 것처럼, 기계처럼 일하고, 학문에 몰두하고, 다수를 안정과 번영으로 이끄는 데 힘쓰고,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헌신했다. 그 오랜 시간 모든 시간과 노력을 투신하여 기틀을 바로 세운 뒤 다 버리고 떠났다. 죽음이 기다리는 전투가 벌어지는 볼리바아의 정글로. 누구도 그를 밀어 넣지 않았다. 스스로의 걸음으로 들어갔다. 쿠바의 경제 혁명가이기도 했던 그의 행보를 보면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은 설득력이 약하다. 적어도 체 게바라의 경우로 보면 영웅은 타고나야만 한다. 타고나지 않았다면 도저히 이럴 수 없다.

자신의 비극을 단 한 줄로라도 옮길 수 있다면, 당신은 더 이상 생의 패배자가 아니다.


나의 사생활/프랭크 워렌

소소한 일상의 비밀들은 알려질 필요 없다. 이미지에 어떤 영향이 미치느냐로 중요도가 결정된다. 극단적인 예로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부유한 것처럼’ 입는다. 처음 만난 또는 주변 사람들에게 부자의 이미지로 보이고 싶으니까. 실제 부자가 아니더라도 남들의 뇌리에 부자의 이미지로 각인된다면 진실이 무엇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내면이 무엇이든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의해 판단되는 사회. 다수의 판단에 묻혀 개개인의 의견은 점점 작아진다. 그것이 시선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슈라면 더욱 그렇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보이는 것에서 부정적인 요소를 발견하는 걸 원치 않는다. 좋은 것만, 예쁜 것만, 밝은 것만 보고 싶고 그로 인해서 기분이 좋아지고 싶은 게 사람 맘이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비슷한 것들을 원하고, 이와 반대편에 있는 다른 이미지들을 본능적으로 무시하게 된다. 개개인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막는다. 그 개인의 목소리가 내 삶에 끼여 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 고민에 휩싸이는 것에 두려워한다. 어쩌면 그 어둠 안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게 될까 봐 그러는 건 아닐까? 밝고 따뜻한 이미지 속에 감춰진 과거와 속내를 들킬까 봐. 이로 인해 비난받을까 봐.

‘나의 사생활’ 은 엽서 한 장에서 시작되었다. 인생 최고의 비밀을 적어 익명으로 부쳐달라고 나눠준 우편엽서. 2004년 11월부터 시작된 프랭크 워렌의 이 비밀엽서 프로젝트는 15만 통이 넘는 폭발적인 반응과 함께 하나의 문화현상이 되었다. 전 세계 많은 이들이 한 장의 엽서를 통해 평생을 감춰온 치부를 기꺼이 드러냈고, 이러한 시도를 통해 스스로를 용서했다. 미국정신건강협회는 이 프로젝트의 자살방지에 대한 공로를 인정, 특별상을 수여했다. 책은 그들이 정성스레 꾸민 엽서를 묶어 놓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영 자물쇠로 채워놓고 싶은 슬픔, 분노, 고통, 외로움, 우울, 사랑, 화해, 추억, 미안함 등에 대한 고백들.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이려는 의도는 없다. 그들이 진정 바랐던 건 세상의 평가가 아닌 스스로와의 진정한 화해였을 테니.

책은 여전히 충분히 탐구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책을 연구하고 책을 쓰고 책을 칭송하는데 자신의 역사를 헌납하고 있다. 당신에게 이들 중 하나가 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말한 책은 겨우 세 권일뿐이지만 앞서 말했듯 강요는, 아니다. 당신에게 이 책들을 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면 먼저 하고, 이미 읽고 있는 책이 있다면 다 덮은 후에 이 책들의 머리말부터 읽어도 된다. 대가는 없다. 당신이 어떤 생각을 가졌든 이 책들이 냉철한 판단력과 배부른 지성을 주입해 케이블 성형 프로그램처럼 놀라운 변화를 준다는 보장은 절대로 없다. 다만 현재의 시공간과는 잠시 거리를 두며 새로운 세계, 새로운 관점, 새로운 인물을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게 다다. 이 책들을 읽은 후, 언제부턴가 스마트해졌다는 칭찬을 들을 수 있다면 그건 덤일 것이다. 시간은 많다. 어떤 경험으로 색칠할지는 당신에게 달렸다.


editor's pick

영화_ 바즈 루어만 감독의 <위대한 게츠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수많은 영화들은 유명 원작에 그 기반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캐리 멀리건 주연의 위대한 게츠비도 그중 하나다.

영화는 세간의 혹평을 받았지만 직접 봤을 때 얻은 시각적 충격과 압도적 연기는 여전히 생생하다.

세상 모두를 완전히 속이고도 결코 위대해질 수 없었던 남자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그렸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8461


영화_ 마크 로마넥 감독의 <네버 렛 미 고>

원작은 <타임>의 '100대 영문 소설' 및 '2005년 최고의 소설'로 선정된 일본계 영국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나를 보내지 마> 영화는 복제인간으로 길러져 정해진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혼란스러워하는 토미, 캐시, 루스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근 미래 영국을 배경으로 복제인간 장기를 통해 생명연장이 시스템화 되었다는 설정도 충격적이지만 아이들이 무슨 인큐베이터나 연구시설에서 사이보그나 더미 같은 모습이 아닌 일반적인 환경에서 보통의 아이들과 같은 모습으로 자라나 장기적출 후 버려지는 모습을 초연하게 그리는 영상 또한 서늘함을 안겨준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2075


음악_ 에릭 슈미트의 <새로운 디지털 시대>

‘사람, 국가, 비즈니스의 미래를 다시 쓰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구글 회장 에릭 슈미트의 이 책은 ‘인터넷은 인류가 만들어놓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PC 한 대로 금융 네트워크를 마비시키고,

휴대폰 한 대로 원격 폭파를 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늘 그렇듯, 문제는 인간이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188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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