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죽은 남자

과거에 쓴 과거의 글

by 백승권

이것은 실화다. 모든 기억은 불완전하고 해석이 덧입혀지며 기억의 주체에 의해 극본으로 변모하기 마련이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 이것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순전한 진실이자 생생한 과거이고 아직까지도 치유되지 않은 명징한 화마를 남긴 비극적 사건이자 꺼내기 두려워지기까지 하는 공포와 두려움에 대한 회고다.


나는 두 번 죽었다. 단 하루도 이 사실을 잊은 적이 없다.


1993년 여름이었다. 개학 이틀 전. 방학 숙제를 안 했었다. 드문 일이었다. 모범생이었으니까. 전교 1등을 밥 먹듯 하고 반장 회장은 늘 내 차지였으며, 매주 월요일 조회대 앞에서 울려 퍼지는 경시대회상, 과학상, 백일장상 등등 수상자 호명에서 내 이름이 걸러진 적은 없었다. 의도하기보다는 주어진 것들에 익숙했고 그러했기에, 방학숙제를 안 한 건 사소했지만 사건이었다. 할아버지와 동네잔치를 다녀오는 길에도 머리 속에 부유하고 있었다. 괜찮을까. 담임에게 1학기 내내 맞은 뺨이 달아올랐다. 괜찮을까. 안경이 날아가고 턱이 돌아갔었다. 괜찮을까. 혼자 어두운 구석에서 홀로 울곤 했다. 괜찮을까. 모두가 날 불쌍한 아이처럼 위로했다. 괜찮을까. 학교에 가기 싫었다. 괜찮을까. 담임은 날 증오하고 난 그런 담임을 증오해. 괜찮을까. 어떤 이유로든 다시 맞을 것이기 때문에. 괜찮을까. 할아버지의 시티 100이 좁은 흙길을 지나 2차선 아스팔트로 진입했고 뒤에서 허리춤을 붙잡고 있던 나의 기억은 거기서 끊어졌다.


교통사고, 난 거기서 죽었다.


프레스토 세단이 뒤에서 박았다. 속도를 줄이지 않았고 그 황량했던 2차선에서 시티 100이 뒹굴었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몸은 아주 짧은 시간 공중에 떠 있다 내동댕이쳐지고 팔과 다리 머리가 깨졌다. 형광등. 천장. 흐릿한 얼굴들. 친척들. 주사를 가득 담은 쟁반. 공간. 초크가 나간 등처럼 깜빡이고 다시 흩어졌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모두가 내 몸을 붙잡고 있었다. 난 그때 체구가 크지도 않았는데. 내 양팔은 묶여 있었고 어깨와 가슴팍은 여러 개의 손으로 눌려 있었다. 그리고 거구의 사내들. 무릎 밑, 아닐 발목 부근인가. 날 부여잡고 있었다. 그리고 비틀었다. 마치 빨래를 쥐어짜듯. 난 뼈가 으스러져 살갗을 뚫고 다 튀어나오는 고통으로 몸부림쳤다.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이 개, 개새끼들아! 아아아 아아악!!!!!!!!!!! 정신을 잃었다.


한 달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고 했다. 그 사이 내출혈이 심해 뇌수술을 했다고 했다. 이마에 그어진 굵은 붉은 선. 환자복. 다리가 무거웠다. 오른쪽 다리가 허벅지까지 깁스로 감싸져 있었다. 아침 점심 저녁때마다 14개씩 도합 하루 40개가 넘는 주삿바늘이 혈관을 드나들었다. 쉴 새 없이 피를 뽑았다.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전동 칼날이 깁스를 갈랐다. 다리도 부들부들 같이 떨렸다. 퇴원 예정일 이틀 전, 8층 정신병동에서 누군가 뛰어내렸다고 했다. 다음 날 그는 내 앞에서 반창고 하나 붙이고 성큼성큼 지나갔다. 성기 부분을 제외하고 목부터 무릎까지 전신깁스를 하던 어떤 꼬마는 깁스를 풀기로 한 날이 하루 지연되자 병원이 떠나가라 종일 울부짖었다. 버스 수리 중 깔려서 실려온 아저씨가 갑자기 복도에 쓰러져 온몸을 떨며 거품을 물던 기억은 양호한 편에 속했다. 하지만 다 이젠 지난 일. 수속을 밟고 목발을 짚으며 밖으로 나왔다. 날씨가 좋았다. 진동이 느껴졌다. 긴 원통형 공사 자재를 가득 실은 트럭이 눈 앞을 지나갔다. 그게 공업용 보일러라는 것을 안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난 거기서 두 번째로 죽었으니까.


툭. 보일러를 묶고 있던 끈이 풀렸다. 그림자. 난 왜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을까. 공업용 보일러들이 마구 떨어지고 있었다. 조금 졸렸다. 내 위의 어둠. 그림자가 눈을 가리고, 어깨를 덮더니 더욱 짙어졌다. 응? 가슴팍을 쪼개며 쏟아지는 죽음의 무게. 고개가 꺾이며 시야가 완전히 뒤집혔다. 왼쪽 팔꿈치가 본능적으로 심장을 막지 않았다면 장기 전부가 터졌을 것이다. 통 안에서 빻아지는 마늘이 이럴까. 지나는 트럭에서 쏟아진 수백 킬로그램의 쇠뭉치를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덮쳤고 쓰러졌으며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원통 주변은 일부 철근 골격으로 감싸져 있었다. 그 철근 골격이 복부를 짓누르고 있었고 뚫릴 것만 같았다. 팔꿈치가 언제까지 버틸 수가 있을까. 압박이 심해졌다. 안경은 이미 얼굴을 찢으며 내려와 깨져있었고 눈앞이 흐려진 나는 뒷덜미에서 뜨거운 기운을 느꼈다. 핏물. 등이 젖고 있었다. 쓰러지면서 바닥에 머리를 부딪친 것 같았다. 복부의 압박이 심해졌고 어지러웠다. 구토. 식도가 뜨거워졌다. 숨이 막혔다. 두려웠다. 죽음이 몸 안에 있었다. 죽음이 피와 구토물에 섞여 마지막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사람들이 달려와 쇠뭉치를 들어 올리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비명과 울음이 주변에서 섞이고 있었다. 기절하지 않았다. 귀가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응급실로 걸어갔다. 거울을 스치며 나를 응시했다. 새하얗게 변한 얼굴, 피 묻은 어깨, 마치 판다의 무늬처럼, 찢기고 흘러 붉은색으로 얼룩진 눈가. 소독약을 부은 줄 알았는데. 뒤통수에서 흐른 피가 침대 시트의 절반을 물들였다. 일주일을 더 입원해야 했다. 흉터는 보이지 않는다. 뒤통수에 있으니까. 난 볼 수 없다. 커트를 할 때마다 가위 든 사람들이 확인해준다. 이게, 뭐냐고.



모든 상처엔 사연이 있다. 차라리 악몽이었으면 좋겠다. 도저히 실화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상처는 인간을 강해지게 한다는 거짓말을 누가 했을까. 이후 난 되려 두려움이 늘었다. 언제든 죽을 수 있고, 앞으로 두 번 세 번 더 죽을 수 있다고 늘 경계하게 된다. 죽음을 쉽게 이야기하는 자들의 숨통을 조르고 싶을 때도 있다. 술자리에서 늘 벌어지는 천하제일 상처 자랑대회처럼 뻐긴 적도 없다. 난 그때와 다른 사람이니까. 이미 물리적, 정신적으로 두 번 죽었고 세 번째 삶을 사는 중이다. 죽음이 삶보다 더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매번 느끼며. 죽음엔 실체가 없다는 것을, 죽음은 이미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도 살 끝으로 절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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