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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Sep 01. 2017

프란츠, 달콤한 거짓말

프랑소와 오종 감독. 프란츠




*스포일러



남편이 죽었다. 독일과 프랑스의 전쟁 사이에서.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그는 죽기 직전까지 전쟁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비극에 괴로워하다 눈감았을 것이다. 약혼자를 잃은 안나(폴라 비어)는 괴로웠다. 외아들을 잃은 부모는 더했다. 전쟁은 끝났지만 프랑스는 증오의 대상이었다. 아들을 죽인 원수들의 국가였다. 어느 프랑스 남자가 찾아왔다. 그의 이름은 아드리앵(피에르 니네이), 죽은 프란츠(안톤 폰 루카)의 친구라고 했다.


아드리앵의 내면은 무너져 있었다. 프란츠의 죽음으로 걷잡을 수 없는 슬픔과 고통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프란츠의 부모들은 그를 통해 프란츠에 대한 상실을 위로받았다.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온 듯 기뻤다. 프란츠에 대해 이야기하는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였고 바이올린 연주에 갈채를 보냈다. 안나 역시 서서히 마음이 움직이고 있었다. 프란츠의 빈자리가 흐려지고 대신 아드리앵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딜 가도 주위의 시선을 끄는 잘생긴 외모, 섬세하고도 사려 깊은 태도와 말투, 말끔하고도 정중한 스타일까지. 안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어렸고 앞날이 창창하며 약혼자가 죽은 상태였다. 프란츠의 부모 역시 안나의 새로운 삶을 원했다. 그 대상이 아드리앵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조금 의아할 정도로 아드리앵의 괴로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아드리앵은 안나에게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을 밝힌다. 자신이 프란츠를 죽였노라고. 프랑스군으로서 독일군인 프란츠를 마주하는 순간 엉겁결에 방아쇠를 당길 수밖에 없었다. 그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프란츠의 자취를 찾아 헤맸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사는 내내 누군가의 사랑하는 이를 죽였다는 고통을, 그 짐을 덜어내고 싶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조차 생을 끝내야 할 정도였다. 정신질환에 시달렸고 정상적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는 결국 자신의 치유를 위해 희생자의 고향을 찾은 셈이었다. 안나는 경악 한다. 남편의 상실감에 어쩔 줄 몰라하다가 남편의 친구라는 자에게 마음을 빼앗겼는데, 그가 남편을 죽인 자였다니. 남편을 빼앗고 모두를 슬프게 만든 주범이었다니. 살의에 넘치든 공포에 질렸든 면죄될 수 없었다. 아드리앵은 떠나고 안나는 진실을 홀로 묻는다. 그가 사라지고 안나는 프란츠를 잃었을 때보다 더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진실을 모르는 부모의 권유에 따라 안나는 아드리앵을 찾으러 프랑스로 건너가기로 한다. 아드리앵이 독일에서 당했듯, 안나 역시 프랑스에서는 적국의 여인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양국의 서로에 대한 분노는 깊이 깔려 있었다. 의심과 차별의 공기를 뚫고 안나는 아드리앵의 집에 도달한다. 그곳에서 또 다른 비극과 마주한다. 아드리앵은 혼자가 아니었다. 곁에서 그를 오랫동안 보살피고 기다려준 패니(앨리스 드 랭커생)가 있었다. 안나는 불청객이었다. 아드리앵은 반겼지만 자신은 이미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안나가 아드리앵을 원하는 것만큼 아드리앵은 안나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안나의 생각보다 더 연약했고 안나와 새로운 삶을 생각할 정도로 절박하지 않았다. 아드리앵은 그렇게 안나를 두 번 죽였다.


안나는 독일로 돌아가지 않는다. 아드리앵은 그녀에게 거짓말의 달콤함을 가르쳐 주었다. 남편에 대한 추억과 새로운 사랑과 삶에 대한 기대감. 모두 완벽한 거짓이었지만 속고 있는 동안에는 너무 환상적이었다. 프란츠가 죽은 후 안나가 가장 밝게 웃는 순간도, 새로운 사랑을 찾으러 기차에 올랐던 순간도 모두 거짓말에 속고 있는 순간이었다. 안나는 좋은 소식을 기다리는 프란츠 부모에게 거짓 편지를 쓴다. 자신은 아드리앵과 잘 지내고 있다고.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마네의 그림 앞에 정지한다. 권총 자살로 쓰러진 남자의 모습. 아드리앵이 좋아한 그림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진실은 모두를 자살로 몰고 가고 있었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거짓말은 필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실이 사라질 일은 없었다. 안나는 남편을 잃었고, 새로운 남편(에 대한 기대감)마저 잃었다. 프랑스가 독일을 괴롭히는 방식으로 보일 정도였다. 마지막 장면은 희망보다는 위태로워 보였다. 아드리앵과 다른, 프랑스 남자가 마네의 그림을 응시하는 안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안나는 다시 속을까. 독일로 보낼 거짓 편지를 계속 쓰기 위해서라도 기꺼이 그 달콤함을 다시 맛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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