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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Sep 05. 2017

레이디 맥베스, 사랑밖에 난 몰라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 레이디 맥베스








캐서린(플로렌스 퓨)은 팔려왔다. 선택하지 않은 결혼이었다. 초야는 없다. 캐서린이 겪는 건 오직 구속과 억압, 복종에 대한 요구뿐이었다. 귀족 마님이었지만 구속되고 억압되며 하녀와 복장만 달라 보였다.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이 많았다. 밖에 나갈 수 없었다. 자기 의지로 뭘 하는 게 용납되지 않았다. 마치 가축과도 같은, 후손을 생산하기 위한 도구였나 싶었지만 남편이란 인간은 거리를 좁히지 않았다. 마음은 멀었고 몸은 더 멀었다. 자신과 다른 계급(성별)과는 어떤 것도 섞기 싫다는 듯 무시와 혐오, 비하의 태도로 일관한다. 그리고 떠난다.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곳으로.


집에 남은 건 잔소리쟁이 영감탱이 시아비와 하인들뿐이었다. 어떤 파동도 없는 늪지 같은 일상, 어느 날 거친 눈빛이 캐서린을 할퀴고 지나간다. 하인 세바스찬(코스모 자비스)은 금지된 장난감이었다. 캐서린은 마침내 생의 유희를 발견한 듯 걷잡을 수 없이 세바스찬에게 빠져든다. 자신의 침실에 들이고 그의 헛간에 닳듯이 드나든다. 눈은 많았고 많은 이들이 그녀의 행적을 알게 된다. 시아비에게 경고를 들었고 세바스찬은 온몸을 두들겨 맞는다. 하지만 고난은 불쏘시개였다. 캐서린은 도발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세바스찬은 점점 그녀의 열기에 소진되고 있었다. 


시아비를 죽인 건 시작이었다. 캐서린은 어렵게 가진 취미를 방해하는 존재를 허용할 수 없었다. 갑자기 돌아온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바스찬을 구하기 위해 캐서린은 남편의 머리를 부숴버린다. 첫 번째 살인처럼 두 번째 살인도 주저함이 없었다. (사랑이라는) 목적은 모든 것을 합리화시켰다. 세바스찬은 미친 듯이 떨고 있었다. 한때 그도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사랑이라 믿은 적이 있었다. 지금은 연쇄살인범일 뿐이었다. 캐서린에겐 더 이상 적수가 없어 보였다. 커다란 집과 하인들을 거느린 채 세바스찬과 여생을 노닐면 그만일 거라 여겼다. 아이가 나타나기 전까지. 


남편이 밖에서 가진 아이라고 했다. 캐서린은 그럴 리가 없다고(없어야 하니까) 주장하지만 아이 보호자 역시 만만치 않았다. 방을 내주고 아이는 집에 거하게 된다. 당장 귀족 마님의 새 남편으로 등극할 뻔한 세바스찬은 다시 헛간으로 내몰린다. 새로운 인생이 코앞이었다. 캐서린의 집착은 두려웠지만 한번 걸친 귀족 옷과 차려진 밥상은 매혹적이었다. 장애물은 아이였다. (사라져야 할) 아이였다. 캐서린과 세바스찬은 다시 살인한다. 


그렇게 3대를 멸한다. 물리적으로 캐서린에게 가장 가까운 세 명이었다. 또한 캐서린의 가장 큰 고통과 고민을 가중시키는 존재들이기도 했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위해 보통 살인이 권장되지는 않음에도 캐서린은 마치 타고난 킬러처럼 셋을 '처리'한다. 살인이 목적이 아닌, 목적에 방해되는 존재의 제거였다. 컨트롤할 수 없는 것들에 둘러싸인 삶 속에서 캐서린이 유일하게 능동적이고 자기 주도형으로 저지르는 일이 살인이었다. 거듭되는 살인을 통해 캐서린은 얼마나 자신이 세바스찬을 원하는지 이 사랑에 완전히 몰입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있었다. 세바스찬을 지킴으로써 자신을 지켰고 사랑이라고 믿는 행위와 감정에 위태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침묵하는 목격자들은 고통받았다. 캐서린은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일탈의 즐거움이 시작된 초반, 캐서린의 입가엔 은밀한 미소가 맴돌았다. 누구도 자기편이 아닌 상황에서 이뤄낸 작은 승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살인 용의자가 된 지금 캐서린은 웃을 수 없었다. 하지만 게임이 끝난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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