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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Oct 10. 2017

택시운전사, 심판의 날이 올 때까지

장훈 감독. 택시운전사



택시운전으로 하루 벌어먹고사는 인생.

어느 날 낯선 사람이 광주에 가자고 했다. 

간만에 목돈을 쥘 기회, 훔쳐야 했다.


모조리 막힌 도로와 길목,

묻고 물어 마침내 도달한 광주는


다른 나라였다. 


황폐한 거리

결의에 찬 학생과 불안에 떠는 시민들

그리고 중무장한 군인들


타협은 계획에 없었다.


신군부 세력의 집권에 반대하는 국민들과

만인의 귀를 막은 채 권력을 차지하려는 괴물들 사이에서

광주는 집단 처형장이었다.


택시운전사 김만섭(송강호)과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쉬만)가

그 혼돈의 중앙에 서서 

충격과 공포, 두려움과 절박함을

체감하고 있었다. 


내가 다치지 않으면 그만인 일

나라의 미래야 어찌 되었든

지금 만섭에겐 두고 온 딸에게 돌아가는 일이

더욱 급했다.


그래서 십만 원이 필요했고

그래서 독일 기자를 훔쳐 태웠으며

그래서 광주에 도달했으니까.


과거의 중력이 자신을

서울로 되돌리려는데

도저히 그렇게 되지 않았던 건

택시 뒷자리에서, 함께한 밥상머리에서, 

옥상에서, 거리에서, 광주 곳곳에서

함께 겪고 떠들며 지냈던 재식(류준열)의

죽음과 마주한 이후였다. 


광주가 죽어 있었다. 

병원과 거리, 눈에 띄는 곳곳에

광주가 시체가 되어 널브러져 있었다. 

독일 기자는 참상을 카메라에 담았고

택시운전사는 그와 함께 목숨을 걸어야 했다. 


목 빠지게 기다리는 딸에게

죄 많은 아비였고

예정되어 있던 택시운전사에겐

승객을 훔친 도둑이나 마찬가지였던 

그는 차마 광주의 피 울음 속에서

자신마저 죽일 수 없었다.


인간으로서의 염치. 

그는 정의를 택한 영웅이 아니었다.

더 비겁해지지 않기 위해

액셀을 밟았던 무명의 운전사였다.


재식의 죽음을 모른 척하며 등을 돌렸다면

자신도 (암묵적으로) 살인에 가담한 죄책감을

평생 지고 살았어야 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만섭에게 있어

최악의 시나리오였고,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운전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의무에 충실하기로 한다.

어쩌면 이것이 선택지의 전부였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인간이 인간의 살과 뼈를 집단적으로 부서뜨리는 

광기의 지옥도를 본 이상,

그는 자신이 위치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자리를 겨우 마련한 셈이었다. 


악으로의 동조는 빠르게 쉬웠겠지만

평생의 피로감과 악몽으로 점철될 최악의 패라는 가정이

그의 누추한 양심을 움직였고 

한 국가의 비극을 전 세계로 송출하고 있었다. 


역사적 비극은 종종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전시된다. 문화소비는 소문이 되고 다수의 지식이 되고 결국 학습과 각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국은 수많은 비극을 통해 세워지고 여전히 위태롭게 굴러가고 있는 집단. 그중에서도 광주 민주화운동은 아직도 못다한 말들로 넘쳐나는 참상을 담고 있다. 더 많은 이들이 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이곳에서 일어난 일'로 알려져야 한다. 희생자들이 먼저 죽어가고 가해자들이 개소리를 하며 불사조처럼 살아있는 이상 택시운전사는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 잊히고 반복되고 다시 병원과 거리에 시체가 쌓이지 않기 위해서는 택시에서 내려서는 안된다. 행선지를 쉽게 되돌려서도 안된다. 계속 광주로 향해야 한다. 심판의 날이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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