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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Oct 17. 2017

내 사랑

에이슬링 월쉬 감독. 내 사랑





나무판자로 만든 작은 집에 같이 살며

모드(샐리 호킨스)는 에버렛(에단 호크)에게 묻지 않는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냐고. 나와 함께 있고 싶냐고.

바라지 않는다. 말과 글로 전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고 청소를 하고 음식을 만든다.


아침 일찍 나가 고기를 잡다 저녁에 들어오는 에버렛은

남을 배려할 줄도 어울릴 줄도 모르는

폭력적인 성향에 괴팍한 성미를 지닌 남자.

모드는 그런 에버렛의 삶에 물감처럼 스며든다.

낡은 벽에 덧칠해지는 곱고 부드러운 색감의 그림처럼

건조한 삶에 색과 온기를 가져온다.


"이 집의 서열을 말해주지.

나, 개, 닭, 다음이 당신이야."


먼지 쌓인 집안일을 도맡을 가정부가 필요했던 남자와

평생 장애인 취급과 자유를 빼앗던 집에서 탈출한 여자의 동거는

본인들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화학작용을 불러일으킨다.


낡은 나무벽의 틈새를 뚫고 얼마나 많은 찬바람이 불어왔을까.

한때 사람들은 모드에게 에버렛의 성노예라고 수군거렸고

이후 모드의 그림이 유명해지자 에버렛을

무관심한 남편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한없이 누추하고 연약한 사람들의 사랑.

모드는 멀리 나가지 못하는 신체적 한계를

상상력으로 바꿔 그림으로 옮기고 있었고

에버렛은 그런 모드의 그림에 값을 매기고

삶을 겨우 연명할만한 이익으로 바꾸도록 한다.


하루의 불이 꺼지면 둘은 한 침대에 눕는다.

결혼을 약속하고 들판에서 수레를 밀어주며

서로와 자신에게 축하를 보낸다.

에버렛의 발등 위에 까치발을 딛고 있는 모드.

오랫동안 춥고 외로웠던 그들은 남들 기준으로 너무도 늦게 만나

너무도 쉽게 바스러지고 흔들릴 듯한 사랑을 겨우 이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서로에게 발설되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며 시간을 견디고 있었을까.

그중 모드의 지울 수 없는 과거에는 죽은 아이가 있었다.

죽었다고 여겨진, 아이였다. 모드의 아이.

장성해 가정을 이룬 그 딸아이에게

죽어도 지우지 못할 그리움을 지닌 모드를

에버렛은 고요히 바래다준다.

먼발치에서 다가가지 못한 채 모드는 자신이 세상에 남긴

가장 위대한 그림을 지켜보며 말 못 한 기분에 휩싸인다.


어느새 희끗하고 푸석푸석해진

모드와 에버렛의 머릿결.

모드는 악화되는 병 속에서

자신의 죽어감을 숨기고 있었고

에버렛은 알면서도 어쩌지 못했다.


지독할 정도로 느리게 죽어가는 삶 속에서 너무 늦게 만나

좁은 방 촛불 같은 온기를 서로에게 전하며 사랑했다. 사랑했다.

원이 없었다. 서로에게 바라지 않아서.

결여 투성이인 자신과 살아주는 당신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주어진 수명을 다한 세상의 모든 짐승의 끝이 그렇듯

모드는 숨을 거둔다. 모드가 가장 행복했다.

멀쩡한 사지를 가진 어느 누구보다도

많이 사랑했고 많이 사랑을 그렸고 그걸 같이 느끼고

같이 있어주는 에버렛이 있어서.

남들은 흉내도 낼 수 없는 관계.

어떤 말도 없이 모든 것을 표현하는

모드의 삶 자체가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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