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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Feb 26. 2018

빅 리틀 라이즈, 사랑한다, 아니 사랑하지 않는다

장 마크 발레 감독. 빅 리틀 라이즈






타인의 시선이 축조한 세계에 산다. 확인되지 않은 말과 과장된 이미지로 덧칠된 동네. 그곳에서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연약하고 치명적이며 은폐된다. 약점이니까. 모두가 남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해석한 남을 이야기하며 우리를 보호한다. 말에서 퍼지는 말, 관심에서 번지는 의심, 네트워크 구축은 생존과 세력 번식을 위한 교미 행위에 가깝다. 기어이 새로운 결과를 이끌어낸다. 안 그래도 생태계는 각자도생을 위해 분투 중. 화려한 저택에 거하고 고급 브랜드 자동차를 끌며 한치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 주변을 살핀다. 완벽에 다다를 수 없는 완벽을 위해 저지르는 길고 치명적인 실수들. 모두가 같은 처지는 아니다. 하지만 누구든 같은 테이블에 둘러앉아야 한다.


여왕들의 세계, 겉으로는 그래 보인다. 자기 주도적이고 독립적이며 당당해 보이는 삶들. 어떤 커플은 식지 않은 부부애를 과시하며 분노장애와 폭력을 거친 섹스로 덮으려 한다. 몸은 섞이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고 육체적 쾌락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위로하지 못한다. 점점 명확히 구분되고 문제를 의식하며 상담사를 찾기에 이른다. 전문가는 감지한다. 위험수위에 다다른 부부로 위장한 종속 관계. 괜찮은 척하다간 한쪽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셀레스트(니콜 키드먼)는 강하게 부정한다. 우리는 너무 사랑하고, 당신의 분석은 틀렸다고. 방어와 부정은 진실과 대면하는 첫 번째 반응이었다. 셀레스트는 안전하지 않았다.


나는 괜찮아. 자기 최면은 얼마나 편리한가. 당신의 남편은 정말 애정이 넘치고 좋은 아빠군요. 이웃의 칭찬은 얼마나 감미로운가. 이미지로 축조된 모래성은 위태로웠다. 부러뜨릴 듯 목을 조르고 단련된 주먹으로 복부를 가격하고 몸 전체를 들어 올려 벽에 집어던지고 있었다. 일상의 뉴스들 중 일부를 그가 몰랐을 때 나는 뭔가를 숨기는 구타유발자가 되었고 그는 억울하고 분노하는 짐승이 되었다. 셀레스트는 살고 싶었다.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없었고, 단절된 정보는 수명을 단축시키고 있었다. 메들린(리즈 위더스푼)과 제인(셰일린 우들리)의 존재는 고마웠지만 자존심마저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사랑이 넘친다고 소문났는데 알고 보니) 맞고 사는 여자로 불리는 게 두려웠다. 아니 자신이 자신을 그렇게 정의해야 한다는 진실이 두려웠다. 인정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여겼지만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무덤 속에서 자신을 변호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두려웠다. 아무도 모르는 진실 속에서 구타당한 채 죽을까 봐. 스스로 구할 수 있는 기회를 무시한, 비참하고 불쌍한 여자가 될까 봐.


더 이상 자신을 기만하지 않는다. 조언을 받아들인다. 도망치기로 한다. 핑크색 털을 지닌 양을 가장한 늑대의 발톱과 성기로부터 더 이상 유린당하지 않기로 한다. 숨이 막힌다. 늑대가 알아차릴까 봐, 그리고 발각된다. 늑대는 '자신을 실망시킨 암컷'을 죽일 모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셀레스트는 밤공기와 눈부신 조명을 뚫고 도망친다. 도망친 곳에서 진짜 친구들과 조우한다. 새로운 삶과 비참한 죽음 사이에서 숨을 헐떡인다. 동공이 터질 듯 확장된다. 늑대가 오고 있었다. 동네의 모든 여왕들이 셀레스트를 지키기 위해 둘러싼다. 늑대는 모두를 할퀴고 뜯으며 거친 팔뚝으로 셀레스트의 숨통을 조른다. 한명만 사라질 일이었다. 그 한 명의 죽음이 전부를 바꿔놓을 수 있었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모든 사연이 면죄부가 될 수도 없다. 과거의 모든 불행이 현재의 모든 폭력을 정당화시켜 주지 않는다. 그걸 모르는 수컷들은 자신의 폭력성을 '이해할만한 행동'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자신을 용서하고 연민을 보내며 상대방도 응당 그렇게 해야 한다고 단정 짓는다. 이해받지 못한 순간 자신의 삶 전체를 부정당하는 듯한 충격에 휩싸인다. 네까짓 게 뭔데 날 무시해. 분노는 폭력을 낳는다. 피를 부른다. 상대가 물리적 약자일 때 더욱 가속화된다. 목을 조를 수 있는 토끼라면 더더욱 맞춤이다. 남성과 여성은 물리적 대립에 이를 경우 철저하게 결과가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남성은 자신이 가해자가 아닌 그저 억울함에 못 이겨 분노한 자로 위장된다. 지금껏 사회는 이러한 수컷을 용인했다. 이해하고 감형했다. 여자에게 책임을 묻고 원인 제공 여부를 추궁했다. 알고 경험하며 학습한 여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법을 궁리했다. HBO 드라마 빅 리틀 라이즈는 그중 일부를 알려 준다. 정보를 (피해 사실을 반드시) 공유하고 전문가에게 조언을 얻은 후 상황의 변화가 아닌 주도적 시도를 통해 살 길을 모색하는 것. 당면한 위험이 경로를 바꾸지 않는다면 피해야 했다. 물론 가장 좋은 해결책은 가해자가 영영 사라지는 것. 거짓말은 그때부터 해도 늦지 않다. 범죄자의 추가 범행을 막기 위해 거짓말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장려되어야 한다. 자신을 속이는 일은 자신의 인생만 갉아먹게 된다. 영혼은 숙주가 된 채, 삶은 거짓으로 뒤덮이게 되고 나중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다. 훗날 그런 자신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또 뭐라고 거짓을 늘어놓아야 할까.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 나를 때리는 그를 사랑한다는 거짓말은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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