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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Jun 11. 2018

바닷마을 다이어리, 불안한 천국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바닷마을 다이어리






스즈(히로세 스즈)의 아버지가 죽었다. 엄마가 죽고 몇 년 후였다. 두 번째 엄마는 어린 아들이 있었다. 스즈는 10대 소녀였다. 학교에 다녀야 했고 돌봐줄 곳이 필요했으며 현재 (두 번째) 엄마는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아버지 장례식의 손님들은 스즈를 가엾게 여겼다. 아버지가 첫 번째 부인과 낳은 세 딸들. 사치(아야세 하루카), 요시노(나가사와 마사미), 치카(카호). 난 그녀들에게 바람난 아버지가 집 나가서 살림 차리고 낳은 딸이다. 반가울 리 없다. 그런데 제안을 받았다. 같이 살자고.


스즈에게 얼마나 많은 선택권이 있나.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어른의 세계에서 벌이진 일들에 무슨 책임이 있나. 그런데 지금 스즈에겐 엄마도 아빠도 없다.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줄 세계가 없다. 자신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자신이 왜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지 누구도 대신 말해주지 않는다. 왜 그걸 스즈가 설명해야 할까. 현실의 남은 어른들이 스즈를 거부하려 한다. 출신, 부모의 선택들, 그리고 그 선택에 의해 피해받은 자들에 의해. 스즈는 밝은 아이였다. 지금은 제대로 웃지 못한다. 주변의 시선과 말들이 웃음기를 박탈했다. 자격 없는 자들이 자격을 운운하며. 개나 고양이처럼 사람은 쉽게 거두는 게 아니라며. 일리는 있지만 스즈는 어떤 선택권도 없었다. 그런데 왜 존재하는 이유만으로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


이런 스즈에게 세 자매의 집은 불안한 천국이었다. 스스럼없이 따스히 맞아주는 여자 어른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부담을 안기지 않으려는 배려와 대화, 음식, 돌아다니는 곳, 이웃들, 스즈는 행복했다. 잃었다고 여겼던 큰 웃음과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잊지 않았다.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니고 자신은 여전히 이방인이라는 것을. 침잠한 눈동자로 집안 곳곳에 움츠리고 있는 스즈의 모습은 사랑받지 못한 자의 전형이었다. 계속 갈구하면서도 표현하지 못하고 지금껏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 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 내내 두려웠을 것이다. 가족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한 상황, 엄마 아빠의 영원한 부재, 낯선 공간, 따스한 사람들, 하지만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다시 이방인으로 내몰리지 않을까. 늘 그래 왔으니까.  


보호받지 못한 자로서 자라온 성장기는 평생을 짓누른다. 남은 생을 유기 공포에 시달리게 만든다. 사치는 그런 스즈를 따스히 끌어안지만, 한편으로는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던 자신에 대한 용서이기도 했다. 스즈는 둘렀던 목욕 타월을 한껏 펼치며 변화된 삶에 안착했음을 스스로에게 표현한다. 타인에게 쉽게 연민에 빠지는 아버지를 닮은 사치처럼 누구보다 자기 위주의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하려는 (엄마를 닮은) 요시노처럼 스즈는 누굴 닮은 모습으로 어른이 되어 있을까. 세 명의 대안 엄마들 사이에서 치유받을 수 있을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부모가 부재한 삶을 살아내야 하는 네 여성의 고난과 슬픔을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화면과 다정한 대사를 통해 위장한다. 어떤 희생과 감내도 당연하게 비추지 않고 이런 상황의 주요인이 된 남성들에게 도망자와 관망자라는 비겁한 지위를 부여한다. 내내 적었지만 가장 짠한 건 스즈였다. 스즈가 어떤 누구의 딸도 아닌 스즈 스스로 생성한 자아로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가족이라는 타인이 규격한 어둠으로부터 자유로워 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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