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에 잃은 것들

엘르. 2013년 3월

by 백승권

사랑을 믿었다. 스무 살 성탄절 이후로 쭉. 하지만 결혼식은 다른 문제였다. 필수 절차일까 고민했다. 관습이라는 이유로 따르고 싶지 않았다.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다수가 희생을 치러야 하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기도 했다. 두 사람에게 사랑이 영원하다면 다수에게 이를 확인시켜주는 절차는 무시해도 될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보여주기 위해 사랑한 것 같아 찜찜했다. 누군들 다르겠냐만 우리 사랑은 세상 모든 커플을 다 합치고 이를 별의 개수에 곱한 것보다 더 고귀했으니까. 하지만 했다. 그녀가 원했으니까. 개인적 사유는 끄적거리다 태우면 그만이었다. 그 후 1200일이 지났다.

연애는 계속되었다. 둘 중 누구도 결혼한 남자, 결혼한 여자처럼 분장하지 않았다. 말투가 바뀌거나 태도가 돌변하지도 않았다. 더 많은 옷을 사고 더 좋은 음식을 먹고 더 좋은 공연을 보고 더 멀리 여행 다녔다. 긴 시간 공들여 준비한 결혼식은 잔치였고 또 다른 시작의 북소리였으며 둘 사이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하나의 침대, 하나의 식탁, 하나의 방에서 하나의 방향, 하나의 움직임, 하나의 시간을 이어왔다. 눈뜨고 피부로 겪는 매일매일의 기적이었다. 특히 그녀가 내 다리를 베고 누울 때의 아련한 체온이 좋았다. 생활이 사건이 될 때 서로의 야수성이 드러날 때도 있었지만, 그마저 숨 막히도록 아름다웠다. 우린 무척 달랐지만 그 다양한 차이 속에서 더 사랑할 것들이 남았음을 확인했다. 표정, 눈빛, 어깨와 팔, 숨결, 뺨, 목소리와 냄새까지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는 것들. 결혼하지 않았다면, 세상 그 누구도 늦은 겨울밤 언 몸으로 귀가한 내게 달려와 온몸으로 안아주지 않았겠지. 결혼과 연애를 나누는 것도 무의미하지만 결혼해서 잃은 것들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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