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 전투, 내가 죽더라도 우리는 끝까지 간다

원신연 감독. 봉오동 전투

by 백승권

포기하지 않는 것은 엄청난 능력이다.
처한 상황과 독한 훈련이 있었겠지만
인간의 초심은 언제든 입장이 바뀐다.
끝까지 타협 없이 끝까지
포기 없이 끝까지 내가 죽더라도 끝까지
폐가 터지도록 달리며 끝까지
포탄에 다리가 날아가도 끝까지
끝까지 끝까지 끝까지 끝까지


이장하는 끝까지 간다.
끝까지 가다가 죽으려는 듯
죽더라도 끝까지 가려는 듯
멈추지 않는다.
생존을 도모하지 않는다.

철저히 자신을 도구화한다.
정신이라도 개조된 듯.
목적에 모든 걸 집중한다.
그게 기대하는 끝이 되지 않을 거라는 신호가
모든 과정 속에서 드러나고 있었는데
이장하(류준열)는 무리를 이끌고
적의 거대 병력을 유도하고
사지를 향해 아수라를 향해 지옥을 향해
달리고 달리고 달린다.

빼앗긴 조국이라는 명분은 뜨겁지만
조국을 되찾은들 누나(고민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작전이 성공한들

이장하의 끝은 결코 끝이 아니었다.
누나와 함께 이장하의 삶도 무너졌으니까.
명분이 없었다.
이장하가 조선의 독립을 열망하며

일본군의 파멸을 위해 달렸을까.
난 개인의 의지가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고

믿지 않는다.
이장하는 잃을 게 없어서
자기 자신마저 없어서 자신을 기꺼이

도구화할 수 있었다.
계획이 있었고 작전이 있었으며
역할이 있었고 임무를 수행 중이었지만
언제든 어떤 이유로든

뜻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전쟁은 불확실성의 대결이었다.
불확실한 집단, 개인, 계획, 타이밍.
한 사람만 작동하지 않아도
단숨에 허물어질 수 있었다.

이장하는 자신의 육체가

병기에 해체되지 않는 이상 뛰어야 한다고

뼈와 살에 각인했다.
그래서 해체된 후에는

또 다른 이장하가 필요했고 그에게

자신의 끝을 맡긴다.
또 다른 이장하가 끝에 다다른 순간,

쥐떼 같은 적군들이 계획대로 들어온 순간
얼마나 기다렸을까. 전장 속에서

같은 편에 대한 믿음의 범위는 어디까지 일까.
모든 방향을 에워싼 총구가 불을 뿜는다.

이장하가 끝까지 가야 했던 이유가 밝혀진다.
이장하는 다시는 달릴 수 없게 되었지만

또 다른 이장하가 왜 필요한지 증명한다.
이장하 같은 이름 없는 자들이 모인

조선군은 봉오동 전투에서 승리한다.
승리는 기록된다. 이름 없는 자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영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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