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오렌지의 탄생과 세상의 끝

단편소설 [오렌지]

by 백승권
movie_image (11).jpg The Million Dollar Hotel(2000)





오렌지 출시일, 폭발사고 사망자는 777명이었다. 폭발로 인해 남산 미세먼지 대피소는 완전히 사라졌다. 폭발력이 세서 강남역과 롯데타워에서 진동을 느꼈다는 증언도 있었다. 주변 차량들의 유리가 깨지고 인근 건물들이 대거 붕괴되었다. 오렌지가 탄생한 지하 연구소도 같이 붕괴되어 사라졌다. 상공을 지나가던 여객기까지 비행에 영향을 입어 추락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언론은 이 폭발사고가 1977년 11월 이리역 폭발사고의 규모와 피해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사망자가 너무 많아 전 세계 언론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세미 그룹의 글로벌 모기업 에프에프의 궐련 회장은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희생자들에게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오렌지 구름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생겼다. 출시일 당일 폭발이 일어났을 때 거대한 오렌지빛과 함께 오렌지 모양 구름이 피어올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한때 해시태그 상위권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모든 해시태그 키워드가 오렌지로 시작했다. 끔찍한 사망 현장을 찍은 사진들이 마구 돌아다녔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할 것 없이 온통 오렌지와 오렌지 출시 행사장의 폭발사건 이야기였다. 세미 그룹의 신제품 전자담배 오렌지의 마케팅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폭발사건 이후 출시 한 시간 만에 전 세계 물량이 완판 되었다. 1개에 9천 원이라는 가격도 화제였다. 일회용이기 때문에 100개를 묶은 제품을 70만 원에 판매했고 이마저도 30분 만에 품절되었다. 기업 주가는 폭등했다. 궐련 회장이 미국 대선 레이스를 준비하기 위해 팀을 짜고 있다는 증권가 찌라시도 퍼지고 있었다.

오렌지 출시 이후, 자살용 담배라고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될 정도로 초반 이슈는 강렬했다. 조기 품절되었을 때는 1개에 90만 원에 밀거래되기도 했다. 정부는 과도한 마케팅을 자제할 것을 권고하고 실제로 인체에 치명적으로 위해를 가하는지 철저히 분석할 거라고 성명을 내놓았다. 하지만 자유시장을 수호하기 위해 기업의 활동에 밀접하게 개입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최근 연달아 터진 사건들의 연관 관계에 대해 면밀히 조사하고 있으며 증거와 증인이 확보될 시 구속 수사할 거라는 방침을 강조했다. 하지만 과거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가 세미 그룹 법무팀으로 이직한 점을 질문받자 서둘러 기자회견을 마쳤다. 세미 그룹 주주 중 공무원이 다수 있다는 점도 질타받았다.

오렌지 후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미세먼지와 맛이 비슷하다는 게시물이 한때 수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미세먼지를 분말로 모아 코로 단숨에 들이켜는 기분이라는 평도 많았다. 오렌지를 이용해 자살을 시도했다는 후기가 많았다. 대부분 10,20대들의 충동적 시도가 많았고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자살에 이르기 위해서는 단숨에 용량의 90%를 체내로 흡수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필수 흡입력이 가정용 청소기 수준으로 필요했다. 을지로 사거리에서 벌어진 88명 집단 자살 퍼포먼스 영상이 공유되기 시작했다. 사망 직전 오렌지를 사용하는 클로즈업 영상이 돌기도 했지만 오렌지 연기가 너무 자욱해 실제로 얼마나 힘을 들여 흡입했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그들이 사전에 음독한 건 아니냐는 설도 돌았다. 그 사이 오렌지는 새로운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놓는다. 가격을 4만 5천 원으로 인상하고 수많은 흡연자들의 원성을 산다. 하지만 10회 정도 사용할 수 있고 환각 효과가 강해져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오피스 마약으로 불리며 인기를 끈다. 20대 초반 남성이 옥상에서 오렌지를 피우다 환각 증세를 이기지 못해 추락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평소 술을 즐겨 마신다는 주변의 증언이 확보되고 음주 후 실족사로 서둘러 결론지어졌다.

오렌지가 의외로 흥행한 쪽은 명상 비즈니스 분야였다. 미세먼지에 찌든 사람들은 도심을 벗어나 교외, 숲 속의 템플 스테이, 수많은 명상 센터를 찾고 있었고 오렌지의 등장은 명상계의 아이폰이나 마찬가지로 추앙되었다. 명상을 위한 몸가짐과 마음 상태가 오렌지의 환각 효과와 만났을 때 그야말로 천국의 문고리를 잡은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증언이 줄을 잇는다. 세미 그룹은 이를 위해 명상에 최적화된 알약 형태의 오렌지를 출시하고 국제 명상 협회에게 감사패까지 받게 된다. 부작용은 있었다. 명상 센터에서 오렌지의 환각효과를 경험한 이들이 집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오렌지 알약을 다량 복용한 우울증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자 마침내 오렌지는 새로운 자살의 아이콘으로 등극한다. 미세먼지를 수십 차례 들이키며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들이 오렌지 알약을 찾느라 동분서주했다. 작정하고 죽기 위해 1000알의 오렌지 알약을 중고나라 거래를 통해 사 왔는데 실제로 복용해보니 스키틀즈와 엠앤앰 초콜릿이었다는 사연과 인증샷이 올라오기도 했다. 잘게 빻아 가루로 만들어 흡입하면 더 효과가 좋다는 평도 있었지만 실험하기엔 가격이 너무 높아진 후였다. 명상용 알약으로 출시된 오렌지 프리미엄은 한 알 당 20만 원을 호가했다. 명상 센터를 빙자한 부유층 자제들의 환각 파티용으로 유통되기도 했다. 국내 100대 기업의 자제들이 모여 오렌지 프리미엄 환각 파티를 하다가 오렌지 프리미엄 알약을 흡입한 절반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관련되었다는 마약사범 2000여 명이 체포되거나 현장 사살된다. 그제야 오렌지는 규제의 대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대형 제약사들이 유사품을 다량을 만들어 팔고 있어서 늦은 감이 있었지만 시중에서 오렌지 전자담배와 알약을 찾기는 점점 어려워졌다. 하지만 이미 오렌지는 세계 담배 역사상 말보로를 제치고 가장 성공한 브랜드가 되었고 브랜드 가치가 40조에 이르며 말보로의 기록을 뛰어넘었다고 발표되기도 했다. 담배와 알약은 판매가 거의 중단되다시피 했지만 세미 그룹은 그 외에도 관련 상품과 서비스를 출시해 다각화에 성공했다. 특히 "과도한 오렌지 복용은 건강에 해롭다"는 메시지를 글로벌 아이돌 100명을 모델로 출연시킨 광고 캠페인을 벌여 전달했고 이들과 함께 글로벌 투어를 해서 사상 최대 규모의 팬덤을 만들어낸다. 이른바 오렌지 제너레이션의 탄생이었다.

오렌지 제너레이션의 나이대는 주로 10대 초반에서 20대 중반까지 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환각 속에서 자유를 찾는다는 게 그들의 특징에 대한 요약이었다. 부모세대들이 미세먼지로 시들어가는 사이 자식 세대들은 오렌지를 통해 환각에 빠져 있었다. 판매 금지된 오렌지의 환각을 VR로 경험할 수 있는 이른바 오렌지 박스가 출시되자 엑스박스는 구세대의 유물로 전락했다. 아이들은 오렌지 VR에 심취되어 등교를 거부하고 학업을 포기했다. 유서를 쓴 후 이주일 내내 오렌지 VR만 하던 학생이 가정 방문한 교사에 의해 시체로 발견되기도 했다. 부검 결과 그 학생은 숨을 거두기 전 이주일 내내 음식 섭취 수면의 흔적이 없었다. 유튜브로 남긴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미세먼지를 마시며 돈을 벌러 나간 부모님은

반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을 만나러 오렌지의 세계로 갑니다.

오렌지의 세계에서 엄마의 따스한 품에 안기고

아빠의 웃음소리와 만날 거예요,

엄마 아빠,

너무 미안해하지 말아요.

저는 당신들의 사정을 알고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이건 저의 자유의지이자 희망 가득한 선택입니다.

친구들아 안녕,

우리 오렌지빛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


교황은 유엔 연설에서 이 영상에 대해 언급하여 오렌지 제너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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