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 침범의 시절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 타인의 삶

by 백승권

사상의 통제를 위한 도청이 빈번하던 때가 있었다. 벽이 무너지기 전의 독일, 정확히 말해 동독. 그곳에 죄 없는 사람도 최악의 정치범으로 만들 수 있는 관료가 있었다. 그는 물리적 폭력 없이도 없던 일을 마치 있었던 것처럼 만드는, 그렇게 믿게 만들어 실토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통제의 범위 안에는 예술도 예외일 수 없었다. 자유와 변화를 꿈꾸는 이들이 있었으며 그들을 주시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극작가와 연극배우 부부는 행복했다. 그들은 촉망받는 예술가였고, 억압 속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퍼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행위는 정부에게 환영받지 못했고, 그들이 모르는 사이, 온 집안엔 도청장치가 설치되었다. 그들의 숨소리 하나까지 누군가의 귓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누군가 그들의 삶 속에 깊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을 감시하는 그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들의 생각은 그가 몸 담고 있는 집단의 이념과 달랐지만 그들의 삶은 따뜻했다. 그것은 그가 갖지 못한 부분이었고, 가슴 깊은 곳에서 동경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일상을 훔쳐내어 보고하는 게 그의 임무였지만 언제부턴가 그들의 사상이 아닌 그들의 삶에 동화된다. 냉철했던 그는 흔들리고 있었고, 그들의 일상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까지 이른다. 하지만 그 또한 누군가의 통제 아래 움직이는 사람이었기에 그의 변화는 정반대의 길로 가는 것이었다. 그는 수많은 유태인을 구했던 쉰들러는 될 수 없었다. 집단의 압박이 시작되고 부부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었다. 그들의 삶에서 빠질 수 없었던 그 또한 불안하기 마찬가지였다. 동독의 벽은 이러한 모순을 통해 점점 균열되어 가고 있었다.


글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위법이었던 시절. 독일도, 우리나라도 그때를 지나쳐왔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자살과 의문사로 위장된 채 죽었고, 그렇게 하면 자유가 통제되리라 믿었던 이들이 있었다. 가해자도, 희생자도 이유를 모른 채 어두운 방 안에 있었고, 소수의 야욕과 모순이 점철된 행위들 속에서 하나 둘 사라져 갔다. 죄 없이 죄를 고백하고, 살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죽여야 했다. 친구도 사랑하는 이도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다. 가해자들의 물음표가 많아지고 희망을 잃지 않은 무리들의 단결이 거대한 행위로 발현되면서 자유는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벽이 무너졌다. 수많은 개인들이 무너진 후에야, 수많은 타인의 삶이 침범당한 그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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