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정윤수 감독.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by 백승권

어떤 사람들은 짧지 않은 연애 끝에 결혼을 한다. 결혼 후에도 그들의 연애감정은 지속되고, 예전 같지 않더라도 과거의 기억을 통해 현재와 합의한다. 서로에 대한 애정표현은 남들 앞에서 쉽게 드러낼 만큼 편하고 또 익숙한 것이다. 하지만 둘 다 알고 있다. 사랑만 가지고 결혼한 것이 아니듯, 사랑만 가지고 결혼생활이 지속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모임이 끝난 후 여자는 갑자기 남자에게 화를 낸다. 왜 당신은 맞은편에 앉아있던 CEO 남자처럼 멋있지 못한 거냐고. 하지만 그녀가 바란 건 자기 남자의 변화가 아니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조건에 맞추어 결혼을 한다. 집안을 맞춰 선을 보고 그렇게 거래하며 상부상조 식으로 절차를 집행한다. 부부라는 무늬로 싸여있지만 각자 집안에 모셔두던 박제된 인형들을 한 곳에 모아 놓은 것과 다르지 않다. 그들의 집안은 어둡고 차갑다. 그들의 침실과 대화 역시 음소거 버튼을 누른 듯 조용하다. 그 무엇도 서로에게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한 이불’만 덮고 있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은 서로에게 자신의 겉모습에 대해 물어본다. 마치 잘 보이고 싶은 누군가가 생기기라도 한 듯.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자신과 결혼하지 않은’ 상대방과 교감을 나눈 그들은 제자리로 돌아온 뒤 혼란에 빠진다. 건설회사 CEO, 패션 컨설턴트, 호텔리어, 조명 디자이너. 그들은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망각할 만큼 감정적인 이들이 아니다. 각자 확고한 자기 자리를 가지고 있고 공과 사의 차가 무엇인지, 진심과 충동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돌아설 수 있는 지점에서 돌아서지 않는다. 그때만큼은 자신에게 이토록 감정적인 순간이 닥칠 줄 몰랐다는 듯 합리화시킨다. 서로의 직업에 관련된 거친 농담을 격렬히 주고받고,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낯선 도시의 골목을 발 벗고 뛰어다닌 기억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첫 페이지였을 뿐이다. 죄책감이란 죄를 저지른 자들의 몫, 그 어느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이 말하는 우리는 더 이상 예전의 ‘우리’가 아니다. 아주 잠깐 ‘이래도 될까’라는 심정이 들었지만 곧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게 더 소중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나중에 어떻게 되든 무슨 말을 꺼내 든 변명은 합리화되지 못할 것을 안다. 그들의 자아는 자신이 아주 궁지에 몰렸으며, 이것은 극한 상황에서의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스스로를 설득했을 것이다. 그들은 결코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한시도 잊지 않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메이지도 않는다. 누구에게 결혼이란 제도가 그랬듯, 누군가가 정해준 자리에 있는다고 해서 자신이 행복과 인정을 얻으며 산다는 걸 의미하지 않음을 그들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질문을 받는 그들의 표정을 상상해보면 한 사람은 지금은 아니라고, 또 한 사람은 그저 아니라고, 다른 한 사람은 그렇게 되고 싶다고, 나머지 한 사람은 지금은 아니지만 곧 그렇게 될 거라고 말할 것이다. 그들 사이에 어긋날 수밖에 없는 사랑의 절박함은 보이지 않는다. 영악한 그들은 모든 것을 던지지 않고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정도로만 감정과 상황을 조절한다. 상처와 미련 따위는 그저 감기 같은 이벤트일 뿐이다. 위기 상황일수록 맺음과 정리의 기술을 빠르게 발휘하며 상대방을 무안하게 만들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사랑’을 통제하면서도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다.





연애의 허상 - 영화와 사랑에 대한 비밀과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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