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부장들, 각하를 쏘다

우민호 감독. 남산의 부장들

by 백승권





김규평(이병헌)이 박통(이성민)을 죽인다.

김규평이 박용각(곽도원)을 죽인다.

김규평이 곽상천(이희준)을 죽인다.

김규평은 '혁명'의 동지들을 처단한다.


처단된 그들은 김규평의 기준에 모두 혁명의 배신자들이었다. 김규평은 박용각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로 인해 김규평의 충성심은 도마 위에 오른다. 지위와 목숨이 위협받는다. 김규평은 당장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암묵적 명령을 따라야 했다. 죽는 게 무섭다기보다는 지금 죽는 건 그의 계획이 아니었다. 박용각은 처리된다. 김규평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하지만 박통은 내내 거슬렸던 박용각의 제거 소식에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김규평은 그제야 박용각의 경고를 몸서리치게 깨닫게 된다. '각하는 이인자를 살려두지 않는다.' 독재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독재자 주변엔 지금 당장 그를 죽이고 싶은 사람과 언제가 그를 죽일 사람들뿐이었다.


김규평은 끝내기로 한다. 그에게 더 이상 대의는 무의미했다. 애초 대의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대의를 따르자는 공허한 세뇌뿐. 총동이 이성을 압도한다. 김규평은 끊임없이 경고했다. 김규평은 자신이 믿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그게 독재자일지언정 직언을 아끼지 않는 자였다. 어떤 관점에서는 충신이었고 어떤 관점에서는 죽고 싶어 환장한 미친놈이었다. 김규평은 늘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고 내부의 적들에게 폭언을 듣곤 했다. 총을 꺼내 겨누거나 멱살잡이도 했다. 김규평의 직속 상사이자 독재자인 박통은 질책과 격려를 번갈아가며 김규평을 흔들었다. 김규평은 흔들리지 않은 적 없었고 박통에게 총을 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박통을 죽이면 죽이고 싶을수록 자신도 곧 박통에게 제거될 거라는 공포에 휩싸였다. 김규평은 자신의 뜻이 국가를 위한 대의라 믿었다. 김규평에게 무리들과 저지른 혁명은 곧 국가를 위한 짓이었다. 김규평은 자신의 뜻과 다른, 기대를 저버린 박통과 개망나니 같은 곽상천을 국가와 혁명의 배신자로 인식했다. 김규평은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입장을 조율하며 안보를 책임져야 했지만 김규평 하나로 국가의 안보는 지켜질 수 없었다. 김규평은 국가의 위협을 제거해야 했다. 어차피 도박이었다.


도박은 절반의 성공으로 국가의 역사를 바꿨고 절반의 실패로 자신을 죽음으로 이끈다. 대의적으로 보면 개인의 성공한 도박이지만 독재는 다음 독재로 이어졌기에 중장기적으로 대의로 이르는 길은 너무 멀었다. 김규평은 결국 자신의 세계 안에서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자들을 처단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김규평이 공적으로 내뱉은 모든 말들은 국민과 국가, 민주주의를 위한 충언이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 테이블에 앉은 모두가 이를 부정했고 계엄령을 거두라는 그의 요청은 눈치 없는 자의 헛소리이자 제거 대상의 발악이 되었다. 법을 자기 맘대로 바꾸는 위치에 군림하고 있어 법이 제대로 심판할 수 없는 자를 김규평은 혁명의 도구, 총으로 심판한다. 그리고 자신은 그 법의 심판에 따라 처형된다. 성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이 이야기는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처럼) 박정희 암살 사건을 거울 삼아 만들어졌다. 전두환 버전도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물론 영화화되기 전에 사건이 먼저 벌어지길 많은 이들이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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