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투 더 와일드, 고립으로 내몰린 젊음

숀 펜 감독. 인투 더 와일드

by 백승권






20대 초반은 선택의 시간이다. 강요된 교육 체계에서 막 벗어나 다 커버린 몸과 불안한 정신으로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는 환상에 젖는다. 제약 없는 사고방식, 무모할수록 추앙받는 삶, 폭발할듯한 자아, 자존, 선을 넘으면 넘을수록, 누구도 다다르지 못한 지위에 올랐다는 착각, 지금의 환상과 망상이 지금까지의 나와 앞으로의 나를 전부 채울 거라는 현재의 나에게 부르짖는 또 다른 주입식 외침. 끊임없이 나를 세뇌하는 나, 나는 유일하고 나는 특별하며 나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고 나는 나로 존재하기에 행복할 수 있다는 극단적 독립성. 스스로의 근력만으로 어미의 뱃속을 탈출하게 아니면서도 젊음은 어느 순간 모두의 머리 위로 스스로 올라갔다며 아무도 듣지 않는 세상을 향해 홀로 절벽으로 올라가 포효한다. 누구도 나를 건드릴 수 없다고. 나는 오직 나라고.


만인의 지식과 정보, 경험의 양과 질이 나이에 비례하지 않지만, 죽기 전까지 버티다 보면 어떤 깨달음이 육체와 영혼을 관통하며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채워주기도 한다. 크리스토퍼 맥캔들리스(에밀 허쉬)는 고립을 자처한 게 아니었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그가 흔히 묘사되는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가정환경에서 스스로의 한계와 생의 궁금증을 떠안고 집 밖으로 생각 밖으로 그때까지의 좁은 세상의 바깥으로 떠났는가. 순전히 생채기 없는 영혼으로 새로운 여정과 모험을 감행했는가. 인투 더 와일드는 그렇게 보여주지 않았다.


엄마를 내던지는 폭력적인 아빠, 고성의 범람, 누가 봐도 사랑과 신뢰는 아주 오래전 말살된 관계들, 그 사이에서 한없이 불안한 표정으로 떨고 있는 소년. 이 구도를 담은 장면 하나만으로도 야생을 향해 떠나며 세상을 등지기로 한 크리스토퍼의 결정은 명분을 획득한다. 기존 준거집단에서 탈피하는 것, 나를 보호해주지 못하는 부모로부터 도망치는 것, 나를 받아줄 새로운 집단을 탐색하는 것, 열정적인 독서와 사색, 탐구를 통해 새로운 정의 새로운 개념으로 세상에 대한 관점을 바꿔보는 것,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아얘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의 문을 두드리는 것,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곳에서 오로지 고독한 나로서 안정과 평화를 누리는 것, 내 삶의 모든 요소를 나 스스로 헤쳐나가는 것, 먹고 자고 견디고... 이게 가능하다고 믿는 것, 모든 물리적 환경적 한계를 '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하염없이 세뇌하는 것, 먼저 혼돈을 겪은 자들의 권고와 충고를 무시하는 것, 자신에게 그럴 권한을 부여하는 것, 그들 개개인 삶의 고뇌와 혼란, 고통을 공감하면서도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반사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밀어내는 것, 끝없는 고통과 고난을 오직 순교자의 태도로만 받아들이는 것, 기회를 져버리는 것, 그것이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는 데, 결코 오지 않을 알래스카행 티켓만 기다리는 것, 기다리다가 죽음과 맞바꾸는 것, 어쩌면 조금은 죽음조차 스스로 선택했다고 여기는 것, 절망과 후회마저 용납하는 것, 모든 대가를 치르는 것, 오직 순결한 육필로 남은 투지를 기록하지만, 악화된 상황을 바꾸지 못하는 것, 독초를 먹은 몸을 병원에 가지 않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수십 일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추위와 굶주림에 떨다가 모든 뼈가 드러나는 앙상한 거죽만으로 임종을 맞이하는 게 처음부터 원하던 결말이었나.

그의 고립은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니었다. 그의 고립은 가정과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자의 강제된 고립이었다. 그는 최초의 인간관계로부터 버림받은 자로써 이후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안정을 얻지 못하고 탈피한 자로써의 자유로움에 도취된 채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정의했다. 그 길은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길이었다. 위험했고 보상이 따르지 않으며 생존이 위협당할 수 있었다. 크리스토퍼는 자유(또는 자신이 자유롭다는 믿음)를 얻고 남은 모든 걸 잃는다. 목숨까지. 안타까운 거래였다. 그의 지성은 마지막 숨이 끊어질 때까지 자문했을 것이다. 내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나는 이렇게 죽지 않았을 텐데. 내게 좀 더 서로에게 다정한 부모,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시간, 결국 어떤 외부의 혼돈 속에서도 회귀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집이 있었다면 나는 이대로 쓸쓸히 아무도 없는 곳에서 고통과 절망을 맞이하지 않았을 텐데. 돌아갈 곳이 있었다면,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게 부모들이었다면 나는 이대로 죽지 않았을 텐데. 신에게 대항하듯 태양을 향해 부릅뜬 마지막 눈빛에는 서러움이 가득했다. 그렇게 뜨거운 젊음이 차갑게 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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