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학교, 불안과 불온의 소녀들

이해영 감독.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by 백승권
movie_image-34.jpg 박보영, 박소담




소녀는 불안하다

존재 자체의 불안이기도 하다

아픈 소녀라면 더더욱 그렇다

불안에 불안이 더해진다

이런 관점으로

소녀들의 기숙사는

불안의 총합, 또는

그 이상의 아우라가 넘실댄다

불온하게까지 느껴지는 것은

예민 해서가 아니다

소녀 각자의 불안과

소녀들의 불안,

그리고 이들을 모두 모아 넣고 몰아넣은

공간과 시대의 불안이

불온감을 조성한다


사라진 소녀들의 행방을

아무도 깊이 묻지 않는데서부터

소녀들은 자신이 언젠가

소리 없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머리가 모인다고 해소되지 않고

새로운 이가 들어온다고

뾰족한 출구를 찾는 것도 아니다

이전의 병이 나아가기 시작했을 때

왜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을까

모두가 똑같은 음식을 먹고

잠이 들어야 했을 때

왜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을까


가장 능동적인 소수가

수동적인 다수 위에 군림한다

신화를 꾸며 공포를 조성하고

가장 적은 움직임이

확실한 평화를 가져온다고 조장한다

묻지 말고, 떠들지 말고, 벗어나지 말고

시키는 데로 산다면

원하는 곳으로 데려가 준다고 유혹한다


마치 믿으면 천국의 문이 열린다는

역사 깊은 종교 지도자들의 말처럼

어린 신도들을 양성한다


자유의지는 변수를 잉태한다

소녀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팔을 감싸며

서로의 이불속으로 파고든다

숨겨온 과거를 드러내고

꿈을 공유하며 정서를 교감한다

울타리 안에서의 자유란 얼마나 연약한가


친구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순간에도

사지를 꺾으며 눈이 뒤집히는 순간에도

그녀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겁에 질려 몸을 움츠릴 뿐

탈피하기 위한 어떤 행동도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방향 없이 도망치고

총에 맞아 쓰러지고

나무에 올라 추락한다


죽음은 실패

생존은 가능성


실험의 일부로

청춘을 반납하고 있었다


가장 은밀한 방식으로

통제된 살인이 자행되고 있었다

기억되지 않을 죽음이었다


소녀들이 친구가 사라졌을 때

더 궁금해하지 않은 것처럼

시대 역시 소녀들이 사라졌을 때

더 찾지 않았을 테니까


모두 대가를 치른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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