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 베테랑
악은 순수하다
세계를 멸망시키려고
죄를 저지르는 게 아니다
재밌기 때문이다
소녀의 가슴에 얼음을 집어넣고
여자의 얼굴에 생크림을 집어던지고
우는 아이를 고개를 들게 해서
피떡이 된 아비를 지켜보게 하고
경호원의 팽창된 근육 위를 담뱃불로 지지고
경호원의 발목을 비틀어 부러뜨리고
자기애를 임신한 여자의 배를 가격하고
그녀의 몸에 마약을 주사하고
재밌기 때문이다
어쩌지 못하는
자신의 태생의 한계 속에서
일그러진 성장을 겪은
자신을 동정하면서도
생존하려고 타인의 생을 한없이 옥죈다
아비가 쳐준 좁은 철옹성 밖으로
쫓겨나지 않으려고 발악한다
약에 취해 감당할 수 없는 파괴를 일삼고
휘하의 노예들에게
또 다른 악을 저지르라고 지휘한다
악이 어떤 파동을 일으키는지
악은 관심이 없다
악의 결정은 말초적이며
악이 원하는 것 역시 말초적인 흥분,
재미, 빠른 해결 이런 것들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룰 따위 역시 관심이 없다
자신이 룰이라는 점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돈과 지위 앞에서
타인의 피와 생명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이런 것들을 알고 나니
사는 게 재미없다
하여 으르렁거리는 개를 끌고 다니며
타인을 겁주고 그들이 겁먹는 모습을 보며
농을 던진다
자신을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피 묻은 수갑조차도 푸는 데
길어야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다
이런 악이 한국영화에 처음은 아니다
돈과 지위에 길들여진
기업형 인간쓰레기는 늘 등장해왔다
베테랑은 그 위에 유아인의 얼굴을 덧씌운다
그렇게 비현실적 태도에 현실적 외형을 갖춘
악이 완성된다
군림하지 않으면
장악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표정으로
정의구현을 부르짖는 서도철과 맞선다
수갑은 채워지지만 거기까지다
조태오도 관객도 알고 있다
저건 쇼라는 것을.
서도철의 단기적 목적은 완성되고
관객들은 통쾌한 처단에 청량감을 느끼겠지만
뉴스에 보이는 조태오의 표정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조태오는 결코 형을 살지 않을 것이고
최상무가 뒤집어쓰고 사건은 종결될 것이다
돈이 계급을 깡패로 만들면서부터
인간과 세계의 역사는 그래 왔다
베테랑이 날고 긴들
부당거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서도철처럼 동분서주 뺑이치며 악을 쫓기보다
조태오의 부와 권력으로 세상을 거머쥐기 원할 것이다
99%의 최상무가 만들어가는 세상 속에서
서도철이라는 자본의 졸개가
피범벅이 된 채 자신을 막는 풍경이
조태오는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