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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떼구르르꺄르르 Jun 28. 2022

곱창 구워 먹고 사람 냄새 뒤집어쓴 날

가도 되는 길은 언제쯤이나


선배와 저녁을 먹고 왔다. 곱창을 구워 먹어서 온 몸에 냄새가 배었다. 선배는 너무나도 반듯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일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한점 부끄럼 없이 매사 최선을 다하며, 자신이 그러하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후배들을 신경 쓰며 자신의 발자국에 뒷사람이 어지럽히지 않도록 노력하며. 앞서 걸어간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고군분투하면서도 꿋꿋이 제약을 이겨내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 존경스러웠다.


"가지 않은 길"은 동문 모임의 제목이기도 하다. 나는 언젠가는 "가도 되는 길"로 바뀌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직까지는 "(누군가 물어본다면) 가도 된다고 말하기 고민되는 길"이지만.


선배들은 참 애정이 많다. 같이 걸어가는, 뒤따라가는 우리들은 그저 선배들 뒤통수와 발자국만 좇아갈 뿐이다. 범상치 않은 뛰어난 선배들을 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토끼 놓치는 기분이 가끔 들 때는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자부심을 느낀다.


무의식적으로 길을 어지럽게 걸으면 안 된다는 압박이 있다. 요즈음은 내려놓았다. 슬기로운 내 후배들은 알아서 잘 찾아올 것이다. 내가 어떻게 매사에 똑바로 걸을 수 있을까. 때로는 비틀거릴 때도 있지. 어쨌든지 계속 걸어 나간다는 게 중요하지.


어지러이 걸어가는 후배지만 내 앞에서 거친 길을 헤쳐나가고 있는 선배 덕분에 안도한 하루다. 선배 에너지 냄새 잔뜩 배어왔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면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오늘 걸어가는 나의 발자국은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지음, 피천득 역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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