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백 Aug 03. 2023

멧돼지 사냥

대한민국에서 사냥꾼으로 산다는 것

 글을 쓰기 앞서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점 하나를 고치고 가야겠다. 내가 본 몇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냥꾼들이 총기류를 집에서 보관하다가 엽총을 꺼내 누군가를 위협하거나, 사람을 죽이거나 자살해 버리기도 한다. 고증이 안 된 것이다. 한 곳에서 이렇게 시작하니, 나머지 드라마들도 다 이걸 보고 따라 하는 것 같다. 이런 장면을 보면 몰입이 깨지면서 드라마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진다. 여기가 어느 나라라고 사냥꾼의 집집마다 총이 있을 수 있는지 부러울 지경이다. 영화처럼 불법무기소지로 사고를 내면, 총기 주인은 바로 쇠고랑을 차야하고, 관할 경찰서도 발칵 뒤집어진다.


 사냥꾼들은 각 개인이 총기를 소지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경찰서에 두고, 엽기 때만 매일 새벽에 총을 반출하고 저녁이면 반드시 반입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대 경찰서에서 난리가 난다. 각종 총기 사고를 막기 위해 사냥꾼과 지방 경찰서에서 각고의 노력을 한다. 그럼에도 무슨 사건사고만 생겼다 하면 사냥꾼들이 용의 선상에 오른다. 사례들을 보면 총이 아닌 칼, 돌, 몽둥이, 다리미, 심지어는 프라이팬으로 사람을 때려 잡기도 한데 말이다.     


 나는 사냥꾼이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사냥꾼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는데, 무에타이 체육관 관장님이 사냥꾼이었던 영향으로 이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관장님은 20대였던 나를 붙잡고, 운동을 가르치는 대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사냥 썰을 풀어주었다. 관장님이랑 얘기를 하려면, 가스버너에 불을 붙여 물을 끓여 맥심 커피를 타야 했다. 지금도 내가 존경하는 우리 관장님은 운동도 정말 잘 가르치셨지만 사냥은 더 잘 가르치셨다. 나는 관장님의 사냥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본디 개를 좋아하던 나는 관장님이 체육관 복도에서 키우던 사냥개 세 마리를 꽤 이뻐해 주던 편이었다. 일어서면 내 어깨까지 올만큼 크고 늠름한 사냥개였다. 어느 밤, 관장님이 사냥터에 따라가 보겠냐고 했다. 백 마디 말을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훨씬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라고 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나는 얼른 채비를 해서 따라나섰다.      

 매일 체육관 복도에 갇혀서 사람만 오면 좋다고 배를 뒤집던 사냥개들이, 산에 올라가자 눈빛부터가 달라졌다. 목에 GPS를 차고 위치 추적을 하며 우리는 개들을 따라 산을 올랐다. 하루종일 좁은 체육관 한켠에서, 사람들이 왔다 갔다 시끄럽게 하는 시간을 견디면, 이렇게 온 산을 헤집고 다니며 사냥 게임을 하는 보상이 주어지는 개들이었다.     


 산 위로 올라가는 중에, 너구리 한 마리가 샤샤샥 하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밤중의 낯선 불청객을 피하는 너구리였다. 세 마리의 사냥개들은 잡으라는 멧돼지나 고라니 대신 너구리 한 마리를 쫓기 시작했다. 순식간이었다. 너구리는 폐기물이 쌓인 곳으로 도망을 가더니, 공장에서 버린 H빔 안으로 쏙 숨어 들어가 버렸다. 개들은 그 너구리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이리저리 발을 굴렸지만, 너구리의 몸집만 겨우 들어갈 수 있는 H빔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 구멍 앞을 서성일뿐이었다. 


 나는 개들이 뻘짓 하다가 다칠까 봐 만류하려 했으나, 관장님은 잠자코 한 번 지켜보라고 했다. 그때였다. 엄마 개 한라가 H빔 끝에 서서 얼굴을 내어 주었다. 너구리가 다가와 한라의 얼굴을 이빨로 꽉 깨물었다. 아빠 개 백두와 아들 개 야시는 한라의 옆으로 가까이 와서 귀를 쫑긋 세워 집중하고 있었다. 한라는 잠시 너구리의 이빨이 좀 더 꽉 들어올 때를 맞춰 고개를 반대쪽으로 싹 돌려 너구리를 H빔에서 빼냈다. 그와 동시에 아빠 개 백두가 너구리의 목을 낚아챘고 아들 개 야시가 너구리의 다리 쪽을 물고 뜯어 너구리 한 마리를 아작을 내 버렸다. 시킨 적도 없고 가르친 적도 없는데 저렇게 한 팀이 되어 일사불란하게 사냥감 하나를 처리한 개들을 보고 나는 온몸에 전기가 통한 듯 전율이 돌았다. 이것이 사냥개구나, 이것이 자연 그대로의 사냥이구나. 5분도 채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속된 말로 뻑 가버렸다.     


 이후 관장님을 따라 사냥터에 많이도 쫓아다녔다. 사람들이 걷지 않는 임도를 다니며 개를 쫓아 뛰어다니는 재미도 으뜸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불법으로 간주되는 총 한 자루를 합법적으로 소지할 수 있는 것에 무척 마음이 끌렸고, 무엇보다, 유해조수를 사냥할 수 있다는 것이 꽤 매력적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굉장히 명예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전에 나는 낚시를 꽤 오랫동안 했다. 사람들은 낚시를 왜 하는가? 물고기를 잡는 게 취미일 수도 있고, 물가에서 멍하게 앉아 있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물고기를 낚는다는 것은, 먹고살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라기보다 재미적인 요소가 더 컸기 때문에 어쩌면 사냥보다 더 가슴이 뛰지는 않았다. 재미로 물고기 입을 찢었다 놓아주는 행위가 어쩌면 훨씬 더 가학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유해조수 사냥은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해야 하는 일이다. 지금도 멧돼지나 고라니 때문에 일 년 농사를 망치는 일이 아주 많이 일어나고 있다. 농사야 자연재해에 따라 흉년이 들 수도 있는 것이라 쉽게 여겨 글자 그대로 보면 ‘농부가 농사를 망쳤구나’ 할 수 있겠지만, 자영업자들이 잘 운영하고 있던 치킨 집에 갑자기 물난리가 나서 일 년간 복구가 안 되는 것이나, 장사가 잘 되는 카페가 불이 나서 한순간에 투자한 모든 것이 날아가는 것과 같이 팔딱 뛸 일이다. 멧돼지 몇 마리가, 고라니 몇 마리가 망쳐놓을 수 있는 우리 농가들의 피해를 줄여주는 것이 사냥꾼들의 할 일이자 임무이다. 본디 호랑이, 표범, 늑대 같은 최상위 포식자들이 해야 할 일이지만 현재는 절멸 상태이므로 인간이 개체조절을 반드시 해야만 동물로부터의 위협에 대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사냥을 할 때 개들과 숨 가쁘게 뛰며 한 마음으로 교감을 하면서 목표물을 잡는 일종의 게임의 묘미가 있다. 그것은 정적인 낚시의 느낌과는 정말 다르다. 사냥개들도 안다. 태초부터 있었던 그들의 늑대 본능을. 그것을 건드려 주면 얼마나 사냥개로 하여금 아드레날린을 폭발하게 해 주는지 모른다.

 혹자는 사냥개가 불쌍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냥이 싫은 개들은 자연적으로 사냥에서 도태가 되고, 사냥개들은 사냥을 하고 싶어 환장한 개들로만 뽑힐 수밖에 없다. 웬만큼 한두 시간 산책으로 빠지지 않는 그들의 에너지는 온 산을 헤집고 다니며 비로소 소진이 되고, 마치 링 위에 올라 싸워야 직성이 풀리는 무에타이 선수들처럼 전장에 나가 싸워야만 하는 피가 끓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건 왠지 링 위에 서야 살아있음을 느끼던 내가 더 잘 알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이제 사냥꾼이라는 것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젊은 사람들의 참여 수가 줄었고, 사냥의 기술도 진화되어 열화상기로 추적해서 한 번에 죽여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은 농가에 피해를 입고 뛰어든 생계형 사냥꾼도 많았는데, 요즘은 이전만큼 사냥꾼들이 적극적으로 모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열화상기로 한 번에 때려잡아버리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사냥에는 최소한 ‘잠든 멧돼지를 공격하지 않는다’ 거나, ‘새끼 돼지는 죽이지 않는다’는 정글에서의 그들과 나의 ‘엽도’라는 게 있었는데, 열화상기는 학살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뭐, 이러나저러나 인간이 편히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죽인다’는 사실은 변함없겠지만.      


 어느 나라나 필요한 사냥꾼들, 최상위 포식자가 없는 대한민국의 유해조수를 처리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필요하고, 민, 관이 힘을 모아야 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아직까지 현장에서 뛰고 있는 전국의 사냥꾼 형님들께 경의를 표한다.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이 시대의 숨은 영웅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백수건달 사생활 

백수건달CEO - YouTub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