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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백 Aug 19. 2023

시골 오니 개가 다섯 마리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실제로 사냥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늙은 개들은 어떻게 되는가.    

 

 나는 사냥개는 군견이라 여긴다. 경찰의 수사를 돕는 경찰견이 있다면, 인간의 재산을 지키고 피해를 줄이려 대동되는 사냥개들은 군견이다. 사냥개들은 특유의 냄새 맡는 능력으로, 인간이 하지 못하는 사냥감을 대신 찾는 일을 해 준다. 물론 위험에 노출이 되는 우려가 있겠으나 그만큼 장점도 있다. 실컷 뛰어다니며 온 산을 누빌 수 있고, 사냥감의 신선한 내장을 가장 먼저 맛볼 수 있다. 사냥은 시킨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본디 늑대의 습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개들만이 선발되어 출전한다. 이런 개들은 산에 풀어놓으면 흥분하여 끓는 피를 주체하지 못하고 사냥감에 달려든다. 물론 사냥터에서 위험한 일을 맞닥뜨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냥개는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가 덤벼들기 때문에, 다굴빵에 장사 없다고 300근이나 되는 큰 멧돼지도 개들을 보면 도망가기 바쁘다. 도시에서도 견주가 목줄을 잘못 잡아 차 사고 나는 강아지가 있듯, 물론 사냥터에서도 불의의 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냥꾼들이 사냥개를 훈련시키고 키우는 데에 들이는 정성이 보통이 아니기 때문에, 사냥을 나갈 때마다 멧돼지에 치여도 목이나 내장을 보호할 수 있는 장비를 채우기 마련이다. 군대에서 입는 방탄복에 쓰이는 캐블러 원단의 개 방탄조끼가 그것이다. 또한 같이 전장을 누비던 개들과는 함께 싸운 전우와 같은 돈독함이 생긴다. 개에 대한 이해나 관리하는 방법 역시, 수십 마리씩 개를 키워 본 사냥꾼이 준전문가라고 본다.


 그렇기에 사냥개들은, 맹견이라고 안락사시켜버리는 도시에서보다 산에서 훨씬 좋은 대우를 받으며 산다고 볼 수 있다. 어릴 적부터 훈련이 된 사냥개들은 주인의 부름에 즉각 반응을 하고 사냥터에 가면 본능적으로 목표물을 찾아 움직인다. 무리 중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은 늙은 개들은 선두에 서서 선생견 역할을 하며 개들을 가르친다. 그리고 뛸 여력이 없어지면, 사냥을 나가는 다른 무리들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밥만 축내고 죽을 날을 기다린다.

 그 선생견 중 한 마리가 은퇴를 하고 2020년 봄, 우리 집에 왔다.     


 노견의 이름은 뚱이다. 뚱이는 관리가 안 되어 있어서 처음엔 손을 댈 수도 없었다. 피부병에 걸려 있었고, 두 눈엔 눈곱이 가득했으며 이빨이 많이 빠져 있었다. 걷는 것도 노인네 같이 어기적 어기적 거렸으며 우리 집에 원래 있던 개들이 냄새를 맡고 호기심을 보여도 귀찮아할 뿐이었다. 뚱이를 보내준 사냥꾼 형님은 뚱이가 곧 갈 때가 된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뚱이에게 마지막으로 맛있는 음식이나 많이 주고 편히 살다 가게 해주고 싶어서 데리고 왔다. 아니, 사실 그보다는 형님들과 함께 사냥터에 나가며 뚱이와 발맞춘 적이 있는데, 나는 멧돼지를 300수 이상 잡은 뚱이가 꽤 멋진 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뚱이가 더 이상 뛰지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 평생 산에서 뛰놀던 애가 말뚝 개가 되어 주어진 사료만 먹다가 생을 마감할까 봐 연민이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해서 데리고 온 뚱이는, 3년이 넘도록 매우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먹기도 많이 먹고 되려 회춘한 것처럼 몸도 좋아졌다. 기분 좋으면 마당을 겅중겅중 뛰어다닌다. 함께 사는 비취와 길동이랑도 잘 지낸다. 노인네가 눈치도 잘 보고 더러는 뺀질거린다. 우리 집 다섯 마리 중 내 말을 가장 안 듣는 배짱 있는 개다. 


 나는 기본적으로 개를 무척 좋아했다. 어릴 적부터 늘 곁에 개가 있었고, 개가 없으면 개를 찾았다. 혹, 내가 찾지 않으면 개들이 나를 찾아왔다.

 십여 년 전 친한 친구가, 큰 개를 도시에서 키우기 어렵다며 파양 보호소에 보낸다고 했던 개가 보더콜리 비취다. 비취는 혈통서도 있는 좋은 개였다. 지인들 중 키워줄 사람을 수소문했는데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아직 어렸던 비취가 다른 집에 가면 덩치 크고 털 많이 빠지고 에너지 넘치는 보더콜리 특성상 또 파양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물론 보더콜리와 같은 품종이 있는 개들은 보호소에 가도 웬만하면 안락사가 되지 않긴 하다. 주인을 찾지 못해 안락사가 되는 건 죄다 사냥개들과 같은 믹스견들이다. 이 또한 씁쓸한 현실이다.

 어렸던 비취는 ‘인간아, 네가 좀 데려가주라’하는 것 같이 나를 보며 초롱초롱한 눈을 반짝였다. 나 역시 불가능하다 생각했지만 며칠 고민하다 결국은 데려왔다. 체육관 사무실 한편을 내어주기 시작하며 비취와 동거를 했다.

 활동량이 많은 보더콜리는 밤마다 한 시간 이상씩 산책을 해주어야 했다. 굉장히 영리하고 잘생긴 비취는 관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물론 개가 싫다며 개 때문에 체육관을 그만두는 회원도 많았다. 그래도 비취를 다른 곳에 보낼 수는 없었다. 하루종일 체육관에서 관원들이 운동하는 것을 멀뚱히 바라보던 비취는 새벽시간만 기다렸다. 새벽이면 내가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하천변에 가서 원반을 던지며 힘을 빼주었기 때문이다. 거의 5년 넘게 비 오는 날만 빼고 매일 반복했던 일상이다. 밤마다 밖에 나가는 것이 비취에겐 하루동안의 유일한 낙이었다. 나갈 시간이 되면 앞발을 구르고 뱅글뱅글 돌며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 와중에 개가 한 마리 늘었다. 마침 경기도 시흥에 물건 놓을 창고를 임대했는데, 그곳에 테라스가 달려 있었다. 이번에도 사냥꾼 형님이, 혼자 개인행동을 너무 많이 해서 못 데리고 다니겠다고 한 개를 한 마리 데려왔으니, 핏불이 섞인 와일드보어 도도다. 과연 도도는 우리 집에 와서도 갖가지 사고를 많이 쳤다. 그럼에도 도도는 사람을 너무 좋아하고 애교가 많았다. 그전에 함께 사냥하며 몇 번을 산에서 발을 맞추었는데, 나만 보면 엉덩이를 드밀고 만지라고 배 뒤집던 크지만 귀여운 개였다.

 도도가 다른 곳으로 가면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채일 것이 눈에 뻔해 보여서 또 내가 데리고 왔다. 사실 도도를 데리고 온 다른 이유도 있었다. 혼자만 사냥을 데리고 가도 멧돼지를 잘 찾고 단독 사냥이 가능하다고 해서였다. 나는 도도와 단둘이 사냥할 것을 꿈꾸며 야심 차게 방탄조끼를 입혀 산에 데리고 갔다. 그런데 무리도 없이 자기 혼자 사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했는지, 이 자식이 멧돼지떼를 보고도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이다. 매우 영리한 개다. 어디 데려가도 죽지는 않겠다 싶어, 죽을 때까지 키워주기로 했다.     

 도도는 우리 회사에 큰 공을 세웠다. 이 자식을 키울 곳이 마땅치 않아 경기도 외곽에 사옥을 짓는 것을 본격적으로 고려했던 것이다. 또 한 가지가 있다면, 이 자식이 먹어치우는 간식 값이 너무 많이 들어서 수제간식 사업까지 시작한 것이다. 자식으로 치면 이 녀석이 효자가 아니겠나 싶다.

 사옥으로 옮기기 전, 경기도 시흥 창고에서 도도가 쫓겨났다. 이유인즉슨, 도도의 오줌 냄새가 너무 심해서였다. 배수로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청소를 매일 열심히 했는데, 개가 오고 난 후로 심해진 냄새를 견딜 수가 없다며 건물주가 사정을 했다. 미리 사무실을 빼주면 복비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안양 사무실로 도도를 데리고 왔다. 사무실은 도도에게 호기심천국이었다. 집기들과 화분 등을 때려 부수며 다녔다. 도시에서는 산책시키기도 어렵고 사무실에 갇혀 있는 녀석이 불쌍해 외곽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이 정도면 개국공신 아닌가. 여하튼 지금 이사를 온 곳은 우리 집 양옆으로 아무 건물도 없고, 개들이 똥이나 오줌을 싸도 물로 씻기 쉽도록 해 두었다. 이렇게 마음 편하게 개를 키울 수 있으니 한시름 덜었다.      


 세 번째로 들어온 개가 뚱이. 그 후로도 시골 똥강아지 길동이와 사냥개 마초가 왔다. 처음 이천으로 이사 갈 때 개가 두 마리였는데, 1년이 지나자 5마리로 늘어버린 것이다.

 시골개 길동이는 생우 5개월 남짓 되었을 걸로 추정하는 새끼 개였을 적에, 대형견만 세 마리가 어슬렁거리는 우리 집 마당에 제 스스로 기어들어왔다. 밥만 먹여 보내려고 했는데 비취가 길동이를 너무 좋아해서 함께 살게 집을 놓아주었더니, 그 뒤로 쭉 눌러살고 있다. 

 마초도 사냥하는 형님이 더 이상 멧사냥을 안 한다고 해서 데리고 왔다. 말 잘 듣는 순딩한 사냥개인데, 1년 정도 낯가림을 심하게 하다가 이제야 우리 집 식구가 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 우리 회사는 대형견 4마리와, 지가 대형견인 줄 아는 7kg 중형견 한 마리가 마당을 지키고 있어서 도둑 들 걱정이 전혀 없다. 내 평생 이렇게 많은 개를 키워보긴 처음이다. 매일 개들을 밥 먹이고 산책시키는 것만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힘들거나 버거운 줄을 모른다. 그 덕에 나도 동네 한 바퀴 더 걷고 못 보던 풍경도 볼 수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비를 맞으면서도 개들 산책을 빼놓지 않는다. 이것은 또한 나의 하루의 낙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회사의 부지를 키워서 더 많은 강아지를 데려다 키우고 싶다. 사람마다 자신의 그릇이 있다면, 나의 그릇은 개들을 돌보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자신의 목적에 맞게 교배시켜 만든 개들이 연 10만 마리씩 버려지고 있다. 그중 크고 못생기고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할 개들은 현 시스템 상 끊임없이 안락사가 되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다 데려다 키우고 싶다'는 말처럼 되려면 더욱 탄탄하게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돈 버는 이유 중의 하나다.



사냥개 도도. 자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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